역사(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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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포로들의 땀과 눈물로 쌓아올린 구마모토성
정유재란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598년 1월, 조선과 명의 6만 연합군은 전라도와 경상도 해안에 틀어박혀 있던 왜군을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정유재란 초기에 승승장구하며 북상하던 왜군은 직산전투에서 명군에 패하며 기세가 꺾였고, 남쪽으로 도망가 각지에 왜성을 축조하고 틀어박혀 있었는데 이곳들을 조선과 명 연합군이 공격한 것입니다. 특히 울산지역에 성을 쌓고 있던 가토 가요마사는 울산왜성을 견고하게 지어놓고 연합군을 맞아 싸웠는데, 그의 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연합군조차 함락시킬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이곳은 식수가 없는곳이었기 때문에 조선과 명군은 주변의 우물을 메우고 근처 강물까지 막으면서 고사작전을 퍘고, 그로인해 성안의 왜군은 식수가 없어 말을 죽여 피를 마시거나 가토 기요마사 역시 천에 고인..
2023.11.08 -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 선비족
선비족은 조선에 복속되어 있던 동호의 일파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동호는 강력했던 조선과 혼동되어 기록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였는데, 조선이 해체된 이후에는 선비족이 갈라져나오면서 독립된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선비족의 기록이 최초로 보이는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입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시절부터 활약한 장수인 부분노를 기록하는 가운데, 유리왕 시기에 고구려를 침범한 선비족을 굴복시켜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비족 전체를 복속시킨 것은 아니고 그 일파를 고구려가 속민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중원을 차지했던 서진왕조가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면서 화북지역은 텅빈 무인지경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선비족이 연나라 지방을 차지..
2023.11.04 -
청나라의 통치실패를 보여준 백련교도의 난
몽골의 원나라가 대륙을 지배할때, 강남지방의 한족들은 불가촉 천민으로 취급받으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운 강남지방에서 몽골족들은 수탈하기 바빴고, 결국 백련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홍건적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결국 원나라가 북쪽으로 쫓겨나고 홍건적의 한 갈래였던 주원장이 황제가 되어 명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주원장은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백련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백련교는 명교라도고 하며 주원장이 나라이름을 명나라로 한 것 역시 사방에서 들고일어나던 명교신자들과 자신의 출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일설도 있는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지만 오히려 주원장이 이들을 탄압하고 나선 것입니다. 명나라 역사 내내 백련교도들은 탄압을 받았고, 결국 명나라가 망하고 청..
2023.11.01 -
환관덕분에 나라가 망한 당나라
흔히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후한은 환관이 득세하면서 망조가 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외척들이 나라를 망치면서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수세에 몰린 환제가 환관들을 모아 외척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권력이 집중되었고, 결국 환관세력은 한나라를 좀먹으며 국가가 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장안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기반으로 건국된 북주는 관롱지방의 귀족들이 만든 국가였기 때문에 군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였습니다. 그런 북주를 찬탈하여 천하를 재통일한 수나라가 건국되었고, 그런 수나라를 다시 찬탈하여 건국된 당나라는 이전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나라는 나름 이름을 날린 태종 이후 약하고 권력욕도 없던 황제들이 잇따라 즉위했고, 결국 무측천이 당나라를 찬탈하여 주나라를..
2023.10.29 -
17살 연상여인을 사랑한 명나라의 암군 성화제
1449년 명나라에서 일어난 토목의 변은 제국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50만 대군을 이끌고 친정길에 나선 명나라 영종은 오이라트의 포로가 되었고, 국정을 농단하던 왕진은 참수당했으며 병부상서 광야를 비롯한 중신들은 전부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고 합니다. 명나라의 황제를 포로로 잡은 오이라트는 북경을 포위하고 공격했지만, 우겸을 중심으로 한 신하들이 일치단결하여 막아냈고 근왕군이 올라와 오이라트군을 공격하자 이용가치가 없어진 영종을 풀어주고 후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북경에는 새로 황제가 된 경태제가 있었고, 영종은 황태자와 함께 유폐되어 우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경태제의 건강이 나빠진 순간 영종을 복위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것이 성공하여 영종은 다시 황제가 되어 경태제를 황제자리에..
2023.10.22 -
세종이라는 묘호가 아까운 암군 명나라 가정제
원래 동양권에서는 세종이라는 묘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나라의 국력을 크게 키워 사방을 정벌한 한무제 역시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았고,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의 힘을 크게 키워 다시한번 중원이 통일되는 기반을 닦은 후주의 시영 역시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특히 쇠퇴하던 금나라를 크게 일으켜세우고 강국으로 끌어올린 완안옹 역시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아 후손들이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유독 명나라에서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가정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암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가정제는 1507년 태어났는데, 원래 황제가 될수 없는 핏줄이었습니다. 정통 황족이 아닌 제위에서 밀려난 방계 혈통을 가진 가정제였지만, 전임 황제였던 정덕제가 방탕하게 놀아나다가 물에 빠져 후유증으로 사망하..
202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