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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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고려와 여진
고려의 문종은 해동천자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사방에서 조공을 받았으며, 고려의 최전성기를 이끄는 명군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큰아들인 순종은 몸이 약했기 때문에 즉위한지 두달만에 사망했고, 둘째아들인 선종이 즉위해 아버지 문종의 치세를 이어가는 고려의 또다른 명군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어렸을때부터 소갈로 고생하는 약골이었고, 선종이 즉위 10년만에 승하하자 헌종으로 즉위합니다. 고려의 해동천자가 되긴 했지만 몸이 약해 항상 누워있던 헌종은 결국 반란을 진압한 숙부 계림공에게 양위하고 말았고, 곧바로 숨을 거두며 계림공은 고려의 숙종으로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여진족은 거란의 끊임없는 견제에도 불구하고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거란의 수탈과 분열정책으로 불만이 쌓여있던 여진은 결국 고려..
2024.03.08 -
조선의 싸이코패스로 의심될만한 영조
우리는 영조를 조선후기의 괜찮은 시기를 이끈 군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래 영조가 죽은후 받은 묘호는 영종이었지만, 나중인 1889년 조선이 황제국을 표방하면서 이전 6대조까지의 군주들을 황제로 추증하는 과정에서 영종이 영조라는 묘호를 다시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다보면 영조는 정말 싸이코패스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될 정도로 오락가락하면서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앞선 현종과 숙종, 그리고 경종 시기에는 온갖 자연재해와 청나라에 일어난 대규모 반란사건으로 정세가 안정되지 않으면서 온전히 국내정치에 힘을 쓸수 없었지만, 나름 안정된 상황에서 즉위한 영조는 국가를 안정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온갖 기행을 보여주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형이었던 경종은 ..
2024.02.29 -
금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장종
금나라 세종은 올바른 정치를 시행했기 때문에, 금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30년 가까이 재위하면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룩했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위엄을 보인 탓에 금나라가 이시기 최강국으로써의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오래 재위해서인지 그의 아들은 군주의 자리도 올라보지 못한채 죽어버렸습니다. 세종은 어쩔수 없이 손자인 완안마달갈을 황태손으로 봉해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세종이 결국 1189년 승하하자 마달갈이 계승하게 되어 장종이 된 것입니다. 장종은 정치적인 능력이 할아버지인 세종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방의 타타르가 금나라를 침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괴로움을 겪었고, 이것을 진압하기 위해 금나라의 정규군만으로 부족한 가운데 몽골부..
2024.02.23 -
숙부에게 황제자리를 빼앗긴 명나라 건문제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선장과 남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10만에 가까운 사람을 죽였습니다. 단순히 반란을 획책한 호유용의 가족과 구족을 죽이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호유용의 정치적 스승인 이선장과 관련된 인물들을 전부 죽였고, 자제력을 잃고 교만해진 남옥을 죽일때도 관련자들을 봐주지 않고 전부 죽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주원장을 비판하거나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전부 죽였기 때문에 주원장 재위 후반부에는 조정에 사람이 없고 바른말하는 신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주원장의 대숙청은 아들과 손자를 위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왕조를 새로 창건하게 되면 아들이 이어받아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주원장의 아들인 주표는 나약하고 너그러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원장이 ..
2024.02.09 -
명나라 최대의 개국공신 서달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사회의 맨 밑바닥 출신이면서도 귀족들을 제치고 황제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황제가 된 후에도 귀족출신들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숙청하기를 반복했느데,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아 천수를 누린 개국공신 서달은 굉장히 특이한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달은 원나라 말엽 몽골이 한창 강남지역을 수탈하고 있었을 무렵인 1332년 안휘성 봉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소를 치는 목동으로써 주원장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로 몰려다녔고, 이후에 주원장이 홍건군에 들어가자 서달 역시 주원장을 따라 홍건군에 합류하여 그의 경력이 시작됩니다. 주원장이 장강을 따라 남하해 중요한 요새인 진강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웠고, 남경을 공략해 오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서달의 역할은 아..
2024.02.02 -
나랏일을 돌보다 과로사한 청나라 옹정제
1644년 명나라가 농민반란으로 멸망하자, 청나라는 이것을 기회로 북경에 들어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군주이던 순치제는 변변치않은 인물이었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강희제가 청나라를 다시 세웠다고 할만큼 나라의 기틀을 완전히 다지게 됩니다. 특히 엄청난 기세로 일어난 내부반란을 진압하고 북방의 러시아가 남하하는것을 막았으며,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여 청나라를 부강한 국가로 만든 공로가 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강희제는 굉장히 오랫동안 재위했고, 재위 후반부로 갈수록 국정이 문란해지고 관료들이 부패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청나라의 주력군이었던 만주팔기군이 오랜 평화로 인해 전투력이 급감하고 약화되었기 때문에, 강희제의 뒤를 잇는 군주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