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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더욱 날씨가 더워지면서 집 근처의 서브웨이까지 걸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침 운전을 하고 지나가던 길에 서브웨이를 발견했고, 잠깐 주차를 하고 들러봤습니다.

이번달은 햄 콤보가 세일이네요.

원래 쿠키까지 포함된 제품들이 많이 할인행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세트에서 쿠키가 빠진 샌드위치와 음료만 들어있는 콤보입니다.

 

하지만 포장해서 가지고 오면서 목이말라 음료수를 먼저 마셔버린 관계로, 콤보지만 샌드위치만 남았습니다.

역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전체적인 상태가 무척 양호하네요.

그동안 걸어서 포장해오던 때와는 많이 달라보이긴 합니다.

 

오랜만에 빵도 화이트로 선택했는데, 빛깔이 조금 어두워서인지 화이트의 느낌은 잘 나지 않습니다.

원래 즐겨먹던 잡곡이 섞인 위트의 색상과 비슷해보여서 그런것인지, 좀더 건강해보이는 느낌이네요.

 

안쪽을 보니 확실히 야채가 많아서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분명 직원분이 만들때 햄이 꽤 많이 들어갔는데도 이렇게 소스와 야채에 가려져서인지 아예 보이지를 않네요.

 

그나마 이렇게 끝부분에 햄의 흔적이 보일 뿐입니다.

생각보다 적어보이는 햄이지만 조리하는 과정에서 줄어들었거나 야채에 눌려서 이렇게 작아진듯한 느낌입니다.

야채를 좀더 들어내면 햄이 더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전에 한번 들어내봤다가 완전히 형태가 무너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아쉬움을 가지고 상태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스에 대한 아쉬움도 생기네요.

좀더 깔끔한 사진을 위해 겨자나 칠리소스는 자제했는데, 그 덕분인지 약간 느끼한듯한 향이 올라옵니다.

 

샌드위치를 잘라보니 확실히 햄이 꽤 들어있다는 느낌이 오네요.

이렇게 숨겨졌던 햄을 찾아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확실히 이번에 먹어본 햄 콤보는 이전에 먹었던 이탈리안 비엠티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좀더 야채의 비중이 높고, 햄 위주로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햄맛이 그렇게 진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래도 야채와 햄의 조화가 좋은 편이라 꽤 괜찮은 맛이 났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햄을 좀더 추가해서 진한 햄맛을 느낄수 있었으면 좀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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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Pmop3vUcm8

지금의 파키스탄 지방을 흐르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의 인더스 문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입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번성했던 문명들은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연구되어 왔고, 그만큼 많은 내용들이 밝혀진 바가 있지만 이 인더스 문명은 아직 많은것들이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문명의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 고도로 발달한 도시들이 버려진 흔적이 보이며, 특히 돌이 뜨거운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린 흔적 등을 보아 어느순간 큰 전쟁으로 도시가 황폐화되었다는 가설이 있을 뿐입니다.

 

인더스 문명의 초기 중심지로 보이는 모헨조다로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길을 중심으로 건물을 세웠으며, 벽돌을 이용해 상당히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과연 고대에 지어진 건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라고 합니다.

거기에 각 가정을 연결하는 하수도관이 존재하여 하수를 한곳으로 모아 처리할수 있었으며 웅장하고 정교한 대중목욕탕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벽면에 방수처리를 해놓았는데 발굴될 당시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는것으로 보아 당시 기술이 상당히 뛰어났음을 알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점들을 통해 살펴볼때, 여러모로 인더스 문명이 발달한 모습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영한 모헨조다로가 왜 갑자기 버려진 것인지는 아직 설명이 부족합니다.

모헨조다로라는 이름 자체가 현지어로 '사자들의 언덕'이라는 뜻이며, 나중에 북쪽에서 내려온 아리아족이 이 도시를 비롯한 인더스 문명 자체를 점령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지인들은 이 유적을 굉장히 무서워하고 꺼린다고 합니다.

분명 그토록 번영했던 이 도시가 순식간에 버려진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고, 그렇게 된 원인마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922년 처음 이 유적이 발굴되었을때 도시의 길거리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발견된 44구의 시신은 모두 길거리에서 아래를 보는 형태로 발견되었고, 모두 손을 잡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신들에서 무기로 죽음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런 시신들은 야생동물들이 달려들어 살점을 뜯어먹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흔적도 보이지 않고, 수천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뼈들이 썩지 않고 남아있는 점 또한 의문점이긴 합니다.

 

거기에 이 유적에서 방사능이 유독 높은 점이 발견되었고, 또한 큰 지진 혹은 폭발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바위가 엄청난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유리화되는 현상까지 관찰되었습니다.

이것은 폭발과 같은 급격한 고온에 노출되었을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며, 결국 이런 흔적들로 보아 이 고대도시에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공격으로 대규모의 폭발이 있었다고 보는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마침 힌두경전중의 하나인 마하바라타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5세기에서 6세기 정도에 기록되었다고 추측되는데, 여기에는 고대의 전쟁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날아다니는 마차들이 서로 불을 뿜었고, 서로 엄청나게 위험한 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에 나오는 브라흐마 웨폰이라는 무기들은 많은 사람들을 그을리고 태우며 녹여버렸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모헨조다로를 끝장낸 무기의 단서가 되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특히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유독 높은 수치를 보이는 방사능과, 바위를 녹여서 유리화되는 높은 온도의 폭발 등으로 미루어 추측해볼때 고대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

만약 모헨조다로에서 핵폭탄이 터졌다면, 남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갑자기 죽어버린 것과 그 후에 도시가 버려지고 나중에 이곳을 정복한 사람들조차 꺼리는 장소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에 핵무기가 존재했다는 점과 누가 이런 병기를 사용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긴 합니다.

하지만 야생동물들도 접근할수 없는 환경과 화약도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대에 엄청난 규모로 일어난 폭발, 그리고 길거리에서 한꺼번에 죽어간 사람들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너무 의문점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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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금 사용중인 갤럭시노트10 플러스의 배터리가 오래되다보니 슬슬 이상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막 이유없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충전하고 있으면 터질것처럼 발열이 나기도 하더군요.

결국 이런 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대전 동대전 서비스센터를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동대전 서비스센터인데, 여전히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많은 곳이라 가는 길마저 복잡한 곳입니다.

이곳은 평일 오전 정도가 아니면 한산한 모습이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이정도의 복잡함은 어느정도 감수하면서 갈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배터리 점검을 받아봅니다.

점검이 끝난후 잠깐 상담을 받았는데, 우선 배터리가 노후화되어 발열이 생기는것은 맞지만 지금 배터리도 상태가 좋은 편이라 혹시 배터리를 교체하더라도 큰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배터리를 교체하기위한 다짐을 하고 왔기 때문에, 그냥 그 자리에서 배터리 교체를 결정하고 실행했습니다.

30분 정도 걸려서 교체가 완료된 후에는 잠깐 점검을 해본 후에 바로 삼성페이로 대금을 결제했습니다.

6.3인치의 갤럭시노트10은 45000원, 저처럼 6.8인치의 갤럭시노트10 플러스는 49500원의 가격이네요.

 

우선 처음 받아보았을때 10퍼센트의 배터리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보조배터리로 충전하면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충전을 해보니 아직 배터리가 새것이라 그런지 아직 살짝 버벅대는 면이 있긴 하네요.

하지만 이전에는 발열 덕분에 이렇게 손으로 잡으면 손바닥에 열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런 점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발열이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해서 많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네요.

 

그리고 새 배터리라 그런지 삼성 멤버스 앱을 통해 배터리를 점검해보니 정상으로 확인됩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배터리도 발열과 광탈 현상이 조금 있었을 뿐이지 정상으로 떴기 때문에 크게 와닿는 부분은 없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발열이 조금 줄어들고, 사용시에 배터리가 균일하게 떨어진다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번에 갤럭시노트10 플러스의 배터리를 교체해봤습니다.

이미 사용한지 2년이 넘은 기기이기 때문에 무료로 교체할수는 없었고, 49500원을 지불하고 유상으로 교체할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아이폰XS의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검색했을때는 거의 8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는데, 그에 비해 갤럭시노트10 플러스의 5만원이 채 안되는 가격은 상대적으로 좀더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기회에 배터리도 새로 교체했으니 이번 갤럭시노트10 플러스는 좀더 오래 써봐야겠습니다. 내년 아이폰SE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출시된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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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백제가 당과 신라의 기습으로 멸망합니다.

웅진에서 항거하던 의자왕이 부하의 배신으로 사로잡히며 당으로 압송되었고, 각지의 백제 부흥군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수도가 함락되었으니 백제는 700여년의 사직을 뒤로 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당으로써는 당나라 태종이 요동에서 겪은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백제를 친 것이고, 원래 목표였던 고구려를 다시 공격하게 됩니다.

661년 고구려 원정군을 다시 편성한 당은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과 중국 영남의 수군을 데려온 방효태, 그리고 유목민족들의 기병까지 전부 데려온 계필하력 등을 총동원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 위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당 태종이 친정했을때는 고구려의 난공불락이던 요동성을 함락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안시성에서 참패함으로써 당나라가 크게 패전하고 쫓겨났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교훈삼아 요동의 방어선을 뚫기보다는 수군으로 직접 고구려의 평양성을 노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의 전쟁에서는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 연개소문이 살아있었다면 허용하지 않았을 압록 부근의 방어선이 뚫린 것입니다.

결국 원정길에 오른 당군이 전부 평양쪽으로 모이게 되고, 수도가 포위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고구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평양을 공격하던 당군은 점차 고구려군의 강력한 저항에 밀리게되고, 당의 변방을 외교술로 뒤흔들어 결국 계필하력이 이끌던 기병들이 후방의 방어를 위해 전부 회군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후에 당시 혹한으로 얼어붙은 사수에서 고구려와 당의 대회전이 벌어지면서 사수전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워낙 남아있는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고구려와 당군의 정확한 숫자와 전투 내용은 알수 없습니다.

다만 중국 영남지방에서 징집한 수군과 자신의 사병들, 그리고 아들들까지 전부 데려와 전투를 치르던 옥저도행군 방효태는 이 전투에서 죽게 됩니다. 그와 함께 방효태의 아들들과 병졸들도 전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확실히 고구려군이 엄청난 전과를 올린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특히 당군이 얼어붙은 사수를 건너고 있을때 고구려군이 바위를 날려 사수를 깨고 당군을 수장시켰다는 내용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고구려 말기에 일어난 전투중에서 가장 큰 승전으로 보입니다.

 

물론 안시성에서의 전투가 당 태종을 철수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긴 했지만 직접 고구려군이 나가서 싸운것은 아니고 성을 지키는 수성전이었으며, 수나라군을 전멸시킨 살수전투에서는 이미 전투의지를 잃어버린 패잔병들을 때려잡은 것이니 아무래도 사수전투가 가장 위급한 상태에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고 보는게 맞을듯 합니다.

 

660년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시키며 기세를 올렸던 소정방이지만 연이은 전투에서 패하고 식량이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특히 당의 원정군 중에 절반이 넘는 고급 지휘관들이 전사했다는 기록을 보면 당군이 전멸하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보급품을 당군에 전해줬고, 식량을 받은 당군이 부리나케 도망쳤다고 하니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또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패잔병이 되어 도망치는 당군을 고구려가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고, 계속 추격하여 피해를 입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결코 편하게 돌아간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군은 그래도 살아남은 소수의 군대가 도망치는데 성공했지만 고구려의 후방으로 들어온 신라군은 퇴각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구려군이 소규모로 매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신라군을 괴롭혔으며, 때마침 내린 큰 눈으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 가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고구려군과 전투를 퉁해 만명의 군사를 죽이고 5천의 포로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그런 힘든 상황에서 당군을 추격하던 고구려가 신라군을 잡기위해 그렇게 많은 군사를 동원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포로 몇명을 잡은것을 과장해서 기록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특히 김유신이 신라군을 이끌고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지만, 나중에 고구려의 추격을 받아 힘들었다는 내용에서는 김유신이 어떻게 대처했다는 내용도 없으며 나중에 고구려군을 격파했다는 대목에서는 전혀 김유신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신라군의 대승이라기 보다는 매복하고 있던 한 무리의 고구려군을 격파한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전투에서 패한 당나라는 한동안 원정군을 편성하지 못할 정도로 위축되었고, 한동안은 대외관계에서 소극적으로 일관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가뜩이나 고구려와 가까운 산동과 하남지방은 원정군을 위한 식량을 공급하느라 황폐화되었다고 하며 두번에 걸친 대원정이 실패함으로써 다시한번 고구려에 대한 두려움도 심해졌습니다.

신라 또한 백제 부흥군과 왜군을 상대하는데 벅차 고구려에는 신경도 쓰지 못했으니 사수전투는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승리였습니다.

다만 이후 사수전투를 이끌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연남생이 중앙정계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당으로 망명하게 되고, 결국 668년 다시 고구려를 침입하는 과정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여 고구려가 멸망하는 결말을 낳았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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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QCY T18이 나오면서, QCY T19와 QCY T20이 동시에 블루투스 인증을 받았습니다.

특히 QCY T20의 사양이 놀랍네요.

역시 언제나의 QCY처럼 저가형으로 나올것이 확실한데도, 블루투스 5.3을 탑재한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QCY는 항상 저렴한 가격과 쓸만한 성능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제품이긴 한데, 이런 모습을 보면 신기하네요.

 

그리고 FCC인증을 받으면서 다시한번 정보가 공개되었는데, 이 모습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번에 나오는 QCY T20은 너무 대놓고 에어팟 3세대를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에어팟 프로와 비슷한 모습을 한 QCY T10의 경우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신형 에어팟을 그대로 따라한 모습으로 출시할줄은 몰랐네요.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과 겉모습만 비슷할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아래쪽 충전되는 부분을 보면 뭔가 절연처리된 에어팟3와는 달리 언제나 QCY가 그랬던 것처럼 포고핀 처리가 되어있네요. 

거기에 물론 전체적인 이어폰의 재질도 그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오픈형 이어폰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동안 QCY가 만들어온 오픈형 이어폰의 사례를 보면 이번 QCY T20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QCY T7의 정말 텅 비어버린듯한 무미건조한 소리에는 상당히 실망했지만, 이후의 QCY T12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괜찮은 소리를 들려준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오픈형 이어폰은 다시 출시되지 않고 있었지만 얼마전 공개된 정보로 다시한번 오픈형 이어폰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구미가 당기긴 하네요.

 

작년 말에 출시되었지만 뭔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에어팟 3세대인데, 이렇게 QCY에서 유사한 디자인으로 출시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조금 기대도 됩니다.

저처럼 이미 에어팟3에 약간 실망한 오픈형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제품이긴 하네요.

물론 너무 대놓고 카피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괜찮은 소리와 가성비를 보여준다면 한번 구매하고 싶어지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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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의 모든 회사들이 라면에 MSG를 넣지 않고 있지만 꿋꿋하게 고집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먹어본 일품 해물라면은 자극적인 맛이 만족스러운데,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네요.

라면은 오뚜기 제품을 자주 먹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팔도제품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특히 일품 해물라면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처음 접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 봉지라면까지 구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확실히 해물라면을 표방해서 그런지 스프속 해물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오징어와 새우, 홍합 등이 들어있는데 솔직히 저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해물 따위가 아닙니다.

 

뒷면의 성분표시를 보니 역시 팔도는 향미증진제를 아직 넣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L-글루타민산나트륨, 소위 MSG라고 불리는 조미료입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안전성을 인정받은 제품인데도 아직 우리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도 라면에 이런 조미료가 들어가야 맛이 좋기 때문에, 그것때문에라도 팔도라면을 구입하고 있긴 합니다.

 

라면의 구성은 평범합니다.

면과 분말스프, 그리고 건더기스프의 굉장히 정석적인 구성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건더기스프를 한번 살펴보니 확실히 해물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말린 미역과 함께 오징어로 추정되는 건더기도 들어있네요.

거기에 파를 비롯한 야채들도 꽤 많이 들어있어 건더기 하나만큼은 정말 만족스러운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매운맛을 강조하다보니 분말스프는 꽤 매운 향이 납니다.

색깔만 보더라도 상당히 빨간 빛이 감돌고 있네요.

 

우선 라면을 끓여보니 확실히 다른 라면들과는 다른 향이 납니다.

진한 해물향에 감칠맛을 위한 조미료까지 들어가서인지, 바로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국물에 달걀을 풀어서인지 약간 탁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매우면서 칼칼한 느낌의 국물이 보입니다.

생각보다 해물의 향이 강하고, 진라면 매운맛보다 보는것만으로 매울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확실히 매운 해물의 맛을 내세우는 제품이니만큼 그런 것에 굉장히 충실한 라면입니다.

 

하지만 역시 팔도라면은 면발이 약간 아쉬운 느낌입니다.

생각보다 뭔가 퍼석거리는듯한 식감이 아쉽네요. 쫄깃한 느낌도 아니고, 퍼진듯한 느낌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듯한 이런 면발은 먹을때마다 아쉽습니다.

다만 국물은 역시 향미증진제의 위력 덕분인지 상당히 자극적이면서 개운한 맛입니다. 확실히 국물맛은 상당히 좋은 제품입니다.

 

이번에 먹어본 팔도 일품 해물라면은 진한 해물맛과 함께 칼칼한 맛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조미료의 힘인지, 다른 제품들보다 좀더 진하면서도 자극적인 맛이 좋네요. 끓여놓은 상태에서 정말 단숨에 먹어치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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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ㄴrㄹr 2022.05.19 20:56 신고

    술먹은뒤 해장으로도 좋아 보이네요

    • hasutalchul 2022.05.19 21:44 신고

      확실히 맵고 자극적인 맛이라 해장에 정말 좋을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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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eiMEEGwn10

벌써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분명 당시 국가를 힘으로 전복시킨 신군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지만, 그 동안 국가를 통치해온 신군부 세력들 덕분에 진상조사도 늦었고, 이미 그때 숨져간 사람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며 어디에 유해가 묻혀 있는지도 알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동안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도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폄훼하던 세력들의 주장을 보면,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하고 도청을 점거했기 때문에 무력을 사용해 진압한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식의 견해는 지금 생각해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지금 버마에서는 군부에 맞서 많은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직접 게릴라전을 수행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그들을 폭도로 지칭하는 것은 버마를 쿠데타로 장악한 군부세력들밖에 없습니다. 그 외의 국가들이나 단체들은 싸우고 있는 버마의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으며 군부에게 물러나라는 비난을 하고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이미 당시 시민들에게 공격용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며 사격했다는 증거도 이미 나온 상황입니다.

특히 사격을 받았던 건물에 공격 증거가 남아있으며,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사격한 증거라는 점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미 당시 하늘에 항공기가 날아다녔다는 증언들이 있었고 여러 증거들이 있으니, 이 점은 사실로 볼 여지가 크다고 불수 있겠습니다.

 

이미 이 사건에 대해서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고, 그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되었지만 아직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미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에 우리 사회가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대사는 비중도 적고, 정확히 설명해놓은 역사서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https://news.v.daum.net/v/20220518095230292

그래도 그나마 이번 보수정권이 집권했지만, 오늘 있었던 행사에서는 보수정권 최초로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하는 등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부는듯한 모습입니다.

그동안은 보수쪽이 집권하면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않거나 그냥 가볍게 넘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이는듯 하니 이전보다는 나아진듯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좀더 바꿔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5.18 이라는 용어부터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3.1절 같은 날짜를 따서 기념일의 명칭으로 하는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렇게 용어를 쓰면 그 날이 가진 의미를 명칭이 전부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5.18 이라는 명칭보다는 이미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를 거친 '광주 민주화운동' 이라는 명칭으로 정립해야 그날에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갔던 분들을 기리는 의미가 들어간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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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동아시아의 영원한 패자로 군림할것 같았던 몽골족이 내부 권력투쟁과 잦은 원정으로 쇠퇴하고 있을무렵, 장강 이남 강남지방에서 일어난 주원장은 몽골과 싸우기보다는 내부투쟁을 계속하여 방국진이나 장사성 같은 지방의 할거세력을 먼저 멸망시켰고, 이후 진우량과의 큰 전쟁을 통해 결국 강남지방을 전부 장악하게 됩니다.

 

이미 수나라 시대부터 천하의 조세중 7할을 담당했던 강남지방의 경제력을 전부 장악한 명나라는 북벌을 시도해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함락시켰고, 원나라 순제는 북쪽의 응창부로 달아났다가 급사하고 태자만 살아 북원을 세워 목숨만 이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명나라는 몽골의 숨통을 끊기위해 명나라가 자랑하는 명장 서달이 이끄는 북벌군을 보내지만 북원의 코케 티무르에게 크게 패하면서 대치상황만 만들었을뿐, 더 이북으로 밀어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 후에 몽골을 견제하기 위해 주원장의 넷째아들 주체를 연왕으로 삼아 주둔시켰고, 한동안 명나라의 치세가 이어지며 몽골과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원장의 큰아들이 급사하고, 상대적으로 어린 황태손이 주원장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새로 등극한 건문제는 예전 한나라의 경우를 본받아 각지에 주둔중인 번왕들을 견제하고 영지를 삭감하는 정책을 펴게 되는데, 이것을 가장 크게 받아들인건 연왕 주체였습니다.

결국 연왕 주체가 훗날 정난의 변이라고 불리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군이 남하하여 남경을 함락함으로써 건문제의 짧은 통치기간은 막을 내립니다. 남경에 들어온 반란군이 황제를 찾았지만 이미 흔적도 없었고, 이 끝까지 찾지못한 건문제의 존재는 계속해서 연왕 주체를 괴롭히는 요소가 됩니다.

 

그렇게 찬탈에 성공한 주체는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집권한 영락제를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반기지 않았고, 특히 방효유는 정난의 변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맞섰습니다. 영락제 앞에 불려온 방효유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찬미하는 글을 쓰라는 명령을 받지만 연나라 도적이 찬탈했다는 내용의 글을 쓰며 도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영락제는 방효유의 구족을 전부 죽이는데, 여기에 친구들과 제자들까지 합쳐 십족까지 죽이게 됩니다.

예전 잔인하기로 이름난 폭군들도 구족을 멸하는데 그쳤지만 여기에 방효유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까지 전부 죽였으니 잔인함 만큼은 영락제가 가장 앞선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특히 사람을 죽이기 전 방효유 앞에 끌고와 울부짖는 모습을 보게 했는데, 자신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의지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자신이 처형당할때까지 태도에 변화가 없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렇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나, 거기에 맞서 십족을 전부 죽인 영락제나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봐야할듯 합니다.

 

그렇게 정난의 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영락제가 황제가 되었지만 탈출한 건문제는 항상 골치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영락대전이라는 백과사전을 출판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글들을 모아 불질러버렸고, 정화라는 환관에게 대규모 선단을 맡겨 해외원정까지 보내게 됩니다. 말로는 명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것이었지만 실제속셈은 탈출한 건문제를 잡아 죽이는 것이 목표였던 원정군이었습니다.

 

이 영락제가 일으킨 정난의 변은 여러모로 이후 조선에서 벌어지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비슷해 보입니다.

숙부가 조카의 자리를 가로채게 되는 점과 결국 반란에 성공한후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것, 그리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전부 없애버리는 것 등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와 세조는 나름 괜찮은 정치를 하긴 하지만, 이후 후손들이 변변치 않아 명과 조선은 동시에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락제가 죽은후 명나라는 황제가 북방 친정에 나섰다가 사로잡히는 초유의 사건인 토목의 변이 일어나게 되고, 조선은 얼마 되지도 않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전라도 남부가 초토화되는 을묘왜변과 삼포왜란을 겪지만 제대로 대체하지 못했으며 결국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이런 결과는 정통성 없는 주체와 수양대군이 반대자들을 죽이고 억지로 군주가 되면서 시작된 씨앗이라고 봅니다.

이후 명나라는 홍치제 하나만 제외하고 평범하거나 능력없는 인간들이 황제가 되었고, 조선은 이후 정조가 등극할때까지 고만고만한 무능한 인간들이 왕위를 이어나갔으니 그때 쌓은 악행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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