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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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은 출중했지만 결국 파멸하고만 이존욱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지역을 차지한 주온은 당나라의 중요지역을 점거하면서 기세를 올렸습니다.하지만 북방의 이극용은 주온의 가장 큰 경쟁자였고, 이극용이 죽으면서 생긴 공백을 이용해 주온이 양나라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공격하게 됩니다.한편 이극용의 진나라를 계승한 이존욱은 당시 24세라는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주온의 주력부대를 무찌르며 이름을 크게 알렸습니다.그렇게 패배하여 남쪽으로 쫓겨간 주온은 항상 이존욱의 존재를 두려워했으며, 그의 아들들이 전부 칠칠지못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건국한 양나라가 멸망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승계한 이존욱은 정식으로 진왕이 되었고, 이후부터 사방의 적들과 싸웠습니다..
2024.05.04 -
당나라의 마지막 명군 선종
당나라는 헌종의 중흥기 이후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원래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민족에 대한 폭넓은 등용과 관대함은 완전히 사라졌고, 한족들을 중심으로 지배층인 선비족의 폐쇄적인 정책이 이어지며 세계제국으로서의 당나라는 완전히 끝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특히 당나라 중기 이후로 세력을 공고히 한 환관세력은 중국역사상 가장 큰 행패를 부리며 황제를 독살하고 정적을 대놓고 죽이는등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거기에 환관들이 황제를 지켜야할 어림군을 장악하고 황제를 조종하며 온갖 패악질을 일삼자, 당나라의 문종은 환관을 전부 제거하기위한 감로의 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유폐되었습니다.환관들은 감로의 변이 실패로 돌아간후 문종을 완전히 무시했으며 신하들 앞에서 잘못을 거론하면서 망신을 주었고, 그로인해 ..
2024.05.01 -
동로마제국의 쇠퇴를 알린 만지케르트 전투
동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바실리우스 2세가 죽으면서 그 다음날부터 동로마는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바실리우스 2세가 생전에 구축한 강력한 동로마 제국군은 무적의 전과를 자랑했고, 동방에서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아바스 제국은 이미 쇠퇴하여 동로마에 대항할 세력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동방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하여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셀주크 투르크의 출현은 동로마에게 큰 타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랍세력이 건재했다면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 투르크와 동로마의 충돌은 이렇게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이미 1048년 경에 셀주크인들이 페르시아와 조지아 일대를 석권하고 동방의 부유한 동로마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전투력을 보존하고 있던 동로마 제국군이 출동하여 셀주크군을 격파..
2024.04.18 -
무굴제국을 크게 일으킨 악바르 대제
무굴제국을 건국한 바부르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몽골의 피를 이어받은 티무르의 후손인 바부르는 떠돌아다니며 기반을 잡지 못하다가 기회를 보아 아프가니스탄과 북인도 일대를 점령하며 무굴제국을 건국했지만 대업을 이룬후 얼마되지 않아 병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은 후마윤은 즉위 후에 사방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아 영토를 잃고 도망치며 망명생활을 이어갔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1542년 그의 아들인 악바르가 태어났고, 망명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떨어져 오아시스 일대에서 자라게 됩니다. 결국 페르시아의 사파비왕조에게 정예병을 빌리는데 성공한 후마윤은 1555년 북인도 일대를 다시 공격해 차지했고, 그의 아들인 악바르도 아버지와 재회하며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나라를 재건한 후마..
2024.04.14 -
당나라 중기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곽자의
당나라를 찬탈한 무측천은 자신을 유일무이한 여황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당나라가 망하고 무측천의 주나라가 들어섰지만, 결국 당나라 종실들의 반격으로 당나라가 다시 부활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우리에게도 유명한 당 현종이 즉위하면서 또한번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당나라의 전성기는 사실 인구가 많이 늘고 국력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과 불합리적인 일들이 터져나오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현종이 믿고 북방의 수비를 맡긴 안록산이 궁지에 몰려 반란을 일으키게 되면서, 그동안 조용이 살고있던 곽자의의 인생도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곽자의의 가문은 원래 무관이 아닌 문관집안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 곽경지는 다섯개의 주 자사를 역임한 관리출신이었고, 그의 조..
2024.04.07 -
하나같이 개차반이었던 선조의 아들들
조선의 14대 군주인 선조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조라는 묘호가 아까운 인물입니다. 물론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는 탁월한 감각과 결단으로 각지에 인재들을 배치하고, 서인과 동인의 싸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왕실과 자신의 권위를 높였으며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등 나름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을 통해 그의 단점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맙니다. 도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기는 커녕 정신못차리고 북쪽으로 도망치기 바빴고, 거기에 온갖 의심병이 돌아 의병장들을 죽이고 권한을 축소했으며 이순신을 비롯한 명장들을 파직하거나 자신의 말만 잘 따르는 원균같은 소인배들을 기용하여 힘들게 육성한 수군을 날려먹는등 전쟁기간에는 완전히 밑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그래도 분조를 운영..
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