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9. 13:04ㆍ역사
송나라의 도성 개봉은 금나라에 포위된지 8개월만에 함락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도성안에 있던 송나라의 황족들은 전부 사로잡혀 금나라의 도성인 상경으로 끌려갔고, 이렇게 송나라의 명맥이 끊기는것 같았지만 운좋게 탈출한 휘종의 아들인 조구는 남쪽으로 도망쳐 강남일대의 중요한 도시인 건강에서 다시한번 송나라를 재건하게 됩니다. 이 남쪽의 송나라를 남송이라고 부르며, 이후 역사는 남송의 고종에 의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남송의 고종은 고자황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는 처음부터 고자가 아니었고, 원래 정비인 헌절황후가 임신한 채 도성인 변량에 있었는데 그녀가 금나라군에 의해 북방으로 끌려가면서 죽는바람에 자식을 낳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한 현비 반씨가 고종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지만, 고종의 멍청함과 찌질함에 지친 신하들이 그의 아들인 조부를 옹립하고 고종을 위협해 쫓아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쿠데타는 바로 진압되고 고종이 복위하긴 했지만, 불과 세살에 불과하던 조부는 충격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고종이 죽인것인지는 몰라도 의문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고종은 전혀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1127년 송나라의 황제로 등극할때까만 해도 후사를 남기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북방으로 끌려간 아내를 버려둔채 다른 여인과 혼인하고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했지만 북방에서 쳐들어온 금나라군이 국경을 넘어 전격적으로 고종이 후궁들과 질펀하게 놀고있던 양주를 습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인지 고종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몸에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후 고자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금나라의 명장 완안올출이 송나라의 명맥을 끊기위해 계속 남하했는데, 얼마나 겁이 났던지 남조의 전통적인 수도였던 건강을 버려두고 그보다 더욱 남쪽인 항주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당시 항주는 부유한 도시로 놀고먹기에도 좋았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로 끼고있어 수전에 약한 금나라군의 약점을 노리고 만약 항주가 함락되더라도 금방 도망칠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송나라의 병사나 백성들의 고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놀고 즐기다가 도망칠 생각만 했던것이며, 금나라 정예병이 불시에 항주를 함락하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기 직전까지 놀아제끼다가 금나라 병사들에 놀라 신하들을 챙길새도 없이 홀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도망칠 정도로 도주하는 능력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이렇듯 무능했기 때문에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고종을 내쫓고 그의 어린 아들을 대신 세울 정도였으며, 각지를 도망다니며 온갖 고생을 한 이후에는 전혀 아들은커녕 딸도 낳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고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기에 송나라의 2대 황제인 태종은 형인 태조 조광윤의 자리를 찬탈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의 적장자인 조덕소를 자살하게 만들고 자신의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그 송 태종의 자손들은 결국 개봉이 함락되면서 전부 북방으로 끌려갔고 살아남은 자도 극소수였습니다. 특히 여진의 우두머리인 금나라 태종이 조광윤을 닮았다는 소문이 퍼지며 송 태조의 자손에게 황위를 넘겨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졌고, 결국 고자황제인 고종은 이런 여론에 굴복해 태조의 자손인 조신을 양자로 삼아 그에게 자리를 넘겼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남송의 유일한 명군인 효종이며, 그나마 고종은 후계자를 잘 선택한 덕분에 더이상의 욕은 먹지 않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골치아픈 일을 피하고 싶었는지 1162년 효종에게 양위하며 태상황으로 물러났지만, 말만 태상황이지 사사건건 모든일에 간섭하며 효종을 괴롭혔고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2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고자답게 이후 자손은 한명도 남기지 못했지만, 효종이 워낙 능력있는 군주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점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송나라의 비공식적인 고자황제인 고종은 능력없고 사치와 방종만 쫓던 무능력한 인간이었지만 그나마 송의 황족으로 태어나 평생을 호의호식하다가 운좋게 국가를 재건했고, 이후에는 비참하게 금나라군에 쫓겨다니는 와중에도 백성들을 착취하며 암군의 자질을 마음껏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그나마 후계자를 잘 세운 덕분에 송나라는 다시 경제를 복구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이어지는 몽골과의 전쟁에서도 여러 명장들이 등장해 남송을 지켜내는 발판이 되었으니 확실히 그의 부족한 능력을 후계자가 잘 채워주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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