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0. 12:23ㆍ역사
간도문제는 조선과 청의 숙제였습니다.
조선은 고려 이래로 공험진 이남의 간도지역을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 철령일대를 노린 명나라 역시 이곳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며 물러난 바가 있을 정도로 확고한 자국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청나라 역시 만주족의 발상지인 만주와 인접한 간도일대를 무인지대로 비워놓으며 만주족이 중원에서 밀려날 경우 이주할 땅으로 인식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조선과 청은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경계를 확정했는데, 이때 정한 경계가 정확하지 않고 모호한 표현이 많아 훗날 영토분쟁의 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1860년대 청은 열강들의 공격을 받아 도성인 북경이 함락되고 함풍제가 도망치는등 수모를 겪었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간도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마침 조선에 기근이 들어 많은 이들이 두만강을 건너 북상해 간도일대를 개척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약해진 청나라는 지방에 대한 통제마저 느슨해져 제대로 대처할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사이를 조선이 파고들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간도를 개간한 조선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평안도에 이곳을 편입시키며 본격적인 개간을 시작했고, 두만강 일대 역시 조선인들이 들어가 개간하며 함경도 북쪽으로 조선의 영향력을 넓혀나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청나라와 조선은 백두산 정계비에 적힌 내용의 해석을 두고 의견차이를 보였으며, 이미 간도남쪽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던 조선은 최대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해 적극적인 의견 피력했습니다.
우선은 조선의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청나라의 주장이 상당부분 수용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선인들이 개간한 간도일대는 그대로 상황이 변하지 않았고 마침 연해주를 통해 진출해온 러시아 세력을 막는데 급급한 청나라는 확실한 조치없이 넘어가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더욱 간도에 대한 자국령 인식은 강해졌습니다.
1899년 청나라에서 의화단운동이 일어나 북경을 장악하고 서양 선교사들과 상인들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져 결국 열강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북경을 함락시키고 청 정부를 굴복시키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러시아 세력이 만주일대까지 남하하자 의화단의 남은 세력과 청나라군이 대한제국의 국경을 넘어 침입해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고, 간도에 있는 한국인들도 위험해지자 대한제국 정부는 진위대를 파견하고 이범윤을 북간도에 보내 한국인들을 보호하기에 이릅니다.
특히 예산의 상당수를 군대증강에 쏟아부어 강력해진 대한제국군은 국경을 넘어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청나라군과 교전해 곳곳에서 승리했고, 요녕성 일대와 간도일대를 장악하며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당시 상황을 반영해 대한제국군을 강화하고 국방력을 보강하던 대한제국은 이렇게 강해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로인해 일본은 대한제국군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904년 일본은 대한제국과 만주를 놓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는데, 이로인해 청나라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러시아군이 결국 패배하며 물러남에 따라 대한제국에 불리한 상황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간도에 파견되었던 간도관리사 이범윤이 경질되고 일본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침에 따라 나쁜 상황이 되었지만 간도는 그래도 우리 영토로 남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1907년 대한제국군이 강제로 일본에 의해 해산되고, 결국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기며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간도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면서 실효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멋대로 간도협약을 체결해 간도를 포기하며 대한제국의 영토를 줄여버렸고, 대신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광산 채굴권을 획득하는 선에서 간도를 무단으로 넘겨버린 것입니다.
분명 간도가 청나라의 영토가 확실하고, 아무 문제없는 곳이라면 굳이 이런 철도부설권이나 광산 채굴권을 얻을 필요없이 그냥 청나라에 넘기면 됩니다. 하지만 청나라 역시 이런 이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간도를 받았으니, 이때의 확실한 실효지배권은 대한제국에 있었던 것이 확실한데도 이렇게 불법적인 거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거기에 간도협약을 비롯한 일제가 체결한 조약들은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국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고, 그런 불법성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간도협약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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