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5. 11:39ㆍ역사
십자군의 홍수속에서도 제위에 오른 마누엘 1세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동방의 패권을 다시 로마제국으로 가져왔고, 많은 원정에서도 승리하면서 또한번 동로마의 영광을 재현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또다시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이 되고 맙니다.
마누엘 1세는 한동안 아들이 없다가 뒤늦게 아들을 얻었습니다.
재위기간이 꽤 길었던 마누엘 1세는 불행하게도 아들이 성장할때까지 살지 못했고, 결국 11살의 아들 알렉시우스 2세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알렉시우스는 어린나이답게 제국을 통치하기보다는 사치와 방종에 빠졌고, 마누엘의 사촌인 안드로니쿠스 콤네누스가 귀족들을 제거하고 선임황제가 되어 국가를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안드로니쿠스는 서방과의 외교를 중시했던 마누엘의 정책을 폐기하고 제국을 고립시켰으며,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내놓아 오히려 국가의 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인기가 떨어지자 안드로니쿠스는 정통에 가까운 알렉시우스 2세를 살해했고, 이것을 계기로 동로마제국은 변방이 이탈하고 반란이 일어나는 혼란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결국 안드로니쿠스는 이사키우스 2세에게 찬탈당하며 죽음을 맞았지만 시칠리아 제국과 부활한 불가리아 제국이 동로마를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그나마 능력있는 황제인 알렉시우스 3세가 즉위해 제국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너무 늦었고, 그의 조카인 알렉시우스 4세는 서방으로 건너가 4차 십자군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켜주면 큰 대가를 치르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외세를 끌어들여 제국을 완전히 몰락시키게 됩니다.
결국 4차 십자군은 수륙 양면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했고, 그동안 외세에 한번도 함락된적 없던 동로마의 수도는 결국 함락되어 그동안 제국이 모아온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털려버렸습니다. 그렇게 남아있던 동로마의 영토는 조각조각나 서방인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그나마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영토를 제외하고 전부 수탈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로마인들의 영토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보존한곳은 니케아를 수도로한 니케아제국이었습니다.
테오도루스 1세가 니케아에서 세력을 재건하고 정비하고 있을무렵 동쪽의 룸 술탄국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라틴제국은 끊임없이 니케아제국을 위협했는데, 특히 라틴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앙리는 대대적으로 니케아를 침공했으며 결국 병력이 고갈되고 세력이 약해진 니케아는 영토를 떼어주고 항복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1221년 테오도루스 1세가 죽고 그의 사위인 요안네스 3세가 즉위했는데, 이것에 불만을 품은 니케아의 귀족들은 라틴제국을 끌어들여 그를 제거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 반란은 니케아제국군에 의해 진압되고 라틴제국의 발칸반도 영역까지 전부 점령했으며, 그렇게 니케아제국의 위엄을 알리는데 성공합니다.
1235년 니케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했지만 성이 워낙 견고한 탓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유럽지역의 영토를 다시 수복했으며 다른 로마인들의 잔재세력을 물리치고 정통에 근접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운이 좋게도 당시 몽골군이 쳐들어와 동유럽 일대을 휩쓸었는데, 니케아제국의 최대 라이벌인 불가리아 제국 역시 몽골의 공격을 받아 초토화되고 병력이 전멸하며 니케아를 막을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니케아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던 룸 술탄국 역시 몽골의 침입을 받아 정예병이 전멸하고 패권을 완전히 상실했으며, 라틴제국 역시 얼마 되지 않는 병력을 잃어버려 니케아의 세력 확장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다시한번 수도회복에 대한 좋은 기운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안네스 3세가 갑자기 죽었고, 그로인해 라틴제국에 대한 공격이 멈춘 상황에서 즉위한 테오도루스 2세마저 4년만에 급사하며 8살의 요안네스 4세가 즉위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테오도루스에게 핍박받은 미하일 팔라이올로구스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공동황제로 즉위해 미하일 8세가 되었으며, 한번 꺾였던 니케아제국은 다시한번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1259년 로마의 잔재세력들과 니케아는 동로마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했고 니케아제국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했지만 다시 실패했으며,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경쟁관계를 이용해 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1261년 베네치아의 수비병들이 급한일로 본국으로 철수한 사이, 라틴제국의 보두앵 2세는 성벽을 믿고 안심하던 차였습니다. 이 와중에 많지 않은 니케아제국군이 정찰을 나왔다가 수비가 굉장히 허술한 점을 간파했고, 결국 니케아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그렇게 견고하던 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보두앵 2세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으며, 그렇게 염원하던 수도를 되찾은 니케아제국은 다시한번 동로마제국을 재건하며 명실공히 정통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견고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 의해 함락된후 동로마제국은 그렇게 멸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나톨리아 서쪽에서 시작한 니케아제국의 노력으로 결국 동로마제국은 재건되었고, 껍데기만 남은 라틴제국을 밀어내며 다시한번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몽골이 니케아제국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 행운이 겹치며 다시한번 동로마의 부활을 도와준 면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 불가능하게 보였던 수도의 탈환과 함께 로마의 역사도 200년 가량 더 이어질수 있었으니 니케아제국의 영향은 상당히 컸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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