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 최대의 명군이지만 굶어죽고만 양 무제

2025. 7. 5. 11:4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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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양나라를 건국한 소연은 어릴때부터 뛰어난 능력을 보인 인재였습니다.

한나라때 유명한 승상이었던 소하의 후손으로 알려진 소연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와 한 집안사람이었던 소도성이 점차 출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조의 송나라는 천하의 개망나니로 불리는 후폐제 유욱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신하들과 양민들을 죽이는 사이코패스였던 그는 당시 높은 직책이었던 소도성마저 죽이려했다가 실패했고, 결국 소도성은 정변을 일으켜 송나라를 뒤엎고 새롭게 제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소씨집안의 사람들은 소도성 덕분에 출세하기 시작했고, 마침 소연도 발탁되어 위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등 비범한 능력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나라는 당시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폐위된 막장군주가 나올 정도로 한심한 상황에서 소보권이라는 또다른 사이코패스가 즉위했습니다. 소보권은 아버지 명제가 간신히 채워놓은 국고를 탕진하는가 하면, 전왕조인 송나라의 유자업과 유욱을 능가하는 쓰레기같은 인물로 온갖 나쁜짓과 살인을 일삼으며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소보권은 소연의 형인 소의도 죽였는데, 이로인해 불만을 가지게 된 소연은 소보권이 보낸 진압군을 격퇴하고 군대를 동원해 도성인 건강을 포위했으며 결국 소보권은 부하의 손에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소연은 한번에 제나라의 모든 실권을 장악했으며, 결국 자리를 선양받아 새롭게 양나라를 건국했습니다.

같은 소씨집안이라 그냥 제나라를 계승해도 되었겠지만 워낙 짧은시간동안 제나라는 완전히 민심을 잃어버렸고, 폭군이 나타나 신하들과 양민을 학살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새로운 양왕조를 개창한 것입니다.

그렇게 소연은 군주의 자리에 올라 나중에 무제라는 시호를 받았기 때문에 양 무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양 무제 소연은 새롭게 양나라를 건국하고 치세를 시작했는데, 마침 그는 굉장히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북쪽 북위가 쇠퇴하기 시작해 양나라를 공격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507년 북위의 명장 양대안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땅을 내주는등 상황이 좋지 않다가 양나라의 명장인 위예가 지원군을 이끌고 참전해 북위군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그로인해 북위군 20여만명이 전사하거나 물에 빠져 죽는등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했고, 이 종리 전투 이후 양나라는 이전의 수비적인 모습을 버리고 공세로 전환하게 됩니다.

종리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진경지는 무제의 총애를 바탕으로 북벌군을 편성해 곳곳에서 북위군을 격파하고 위나라의 도읍인 낙양까지 함락시키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제때 이루어지지 못한 보급과 너무 적은 북벌군의 숫자로 인해 결국 북위의 정예군을 이끈 이주영에게 패배하며 북벌군은 전멸하고 양나라의 좋은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안정된 상황에 힘입어 양 무제는 제도를 정비해 내치를 안정시켰으며, 불교를 장려해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50여년을 안정된 모습으로 통치한 무제의 시기에는 문화가 융성하고 강남일대의 개발이 어느정도 진척되면서 남조 최대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제 자신이 너무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건강 인근의 동태사에 여러번 투신하며 국고를 크게 낭비했고, 길어진 재위기간에 긴장이 풀어져 정치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며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굶주리는 백성들이 늘어나는등 폐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북쪽의 강대한 적이었던 북위가 분열되어 동위와 서위로 나뉘었는데, 이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이들 사이의 분열에서 전혀 이득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고 맙니다.

특히 동위의 장수였던 후경이 반역혐의를 뒤집어쓰고 양나라로 망명했는데, 워낙 평화시기가 길어져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상황을 간파한 후경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후경의 반란군은 천명 남짓한 정도였지만, 건강으로 진격하는 후경군을 양나라의 군대가 전혀 막지 못했습니다. 각지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무제의 아들과 친척들이 있었지만 후경이 무제를 죽이면 서로 자신들이 군주가 될 생각에 오히려 배를 동원해 건강까지 장강을 건널수있게 도와주는가 한편, 건강 수비를 맡은 인물은 반란군을 보고 도망가기에 바빠 그대로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양나라는 평화가 길어지며 전혀 후경의 반란군에 대항하지 못했고, 곳곳에서 건강이 포위되며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가 널렸고 전염병까지 돌아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반란군들은 곳곳에서 학살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후 후경은 건강을 장악하고 무제가 있는 궁성을 포위했습니다. 군사를 이끈 후경이 궁에 들어가 무제를 만났을때는 그래도 관록이 있는 무제라 후경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반란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하는데, 결국 궁에 갇히게 된 무제는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한채 86세의 나이로 굶어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무제가 죽고나서 양나라의 대권은 그의 아들 소역의 손에 넘어가지만 서위의 침입을 받아 도읍인 강릉이 함락되고 소역이 피살되면서 양나라는 무제가 죽은후 8년후에 힘없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양나라를 건국한 무제 소연은 분명 능력있는 사람이었고, 즉위 초에는 좋은 정치와 부지런함으로 국가를 어느정도 안정시키고 남조 최대의 번영을 이룩한 공로가 있습니다. 하지만 즉위가 길어지면서 좋은 상황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를 파멸로 이끌었고, 북방에서 망명한 장수마저 통제하지 못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된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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