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8. 18:52ㆍ역사
정유재란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598년 1월, 조선과 명의 6만 연합군은 전라도와 경상도 해안에 틀어박혀 있던 왜군을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정유재란 초기에 승승장구하며 북상하던 왜군은 직산전투에서 명군에 패하며 기세가 꺾였고, 남쪽으로 도망가 각지에 왜성을 축조하고 틀어박혀 있었는데 이곳들을 조선과 명 연합군이 공격한 것입니다.

특히 울산지역에 성을 쌓고 있던 가토 가요마사는 울산왜성을 견고하게 지어놓고 연합군을 맞아 싸웠는데, 그의 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연합군조차 함락시킬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이곳은 식수가 없는곳이었기 때문에 조선과 명군은 주변의 우물을 메우고 근처 강물까지 막으면서 고사작전을 퍘고, 그로인해 성안의 왜군은 식수가 없어 말을 죽여 피를 마시거나 가토 기요마사 역시 천에 고인 물을 짜마시며 버티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농성하던 왜군은 근처의 세력들이 점점 지원을 오게 되면서 포위에서 풀리게 됩니다. 결국 오랜 포위와 식량난, 그리고 식수난에 시달리던 가토 기요마사는 반죽음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며 이런 경험은 훗날 그가 구마토토성을 쌓는데 고스란히 반영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가토 기요마사는 자신의 영지인 구마모토로 철수하면서 조선 울산지역에서 납치한 포로들을 수만명 끌고 갔다고 합니다. 물론 이 포로의 숫자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긴 하지만, 그가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납치한것 만큼은 의심할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그리고 구마모토에 조성되어 있던 성을 고쳐쌓으면서 이때 납치한 조선인 포로들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구마모토성의 기와는 조선식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지금도 남아있는 구마모토시의 울산정역이라는 지명을 살펴봤을때 울산지역 포로들이 대거 정착한 것으로 추측될 정도입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구마모토성을 살펴보면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성 전투에서 얻은 교훈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포위되었을때 식량과 식수가 부족해 고생했던 것을 거울삼아 급할때 식량을 쓸수 있는 토란줄기로 방바닥을 깔았으며 조롱박과 은행나무를 심어 비상식량으로 쓸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안에 120개에 달하는 우물을 파서 대비했다고 하니, 조선에서 죽을뻔한 기억을 살려 구마모토성을 고쳐쌓으면서 이런 요인들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남아있는 구마모토성은 굉장히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당시 축성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포로들의 고생도 심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원래 성을 쌓는것은 고역인데다 가토 기요마사는 전국시대부터 이어진 복잡하고도 견고한 성벽 축조 비법을 가지고 있던 인물인만큼 조선인 포로들의 고생은 몇배 더 위중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완성한 구마모토성이었지만, 원래 이 지역은 지진이 잦은 곳이라 성벽은 지진에 노출되며 지속적으로 무너지고 재건하기를 거듭해왔습니다.
특히 1623년과 1854년 큰 지진으로 성벽이 크게 무너졌고, 태평양전쟁에서 패한후 재건되었다가 2016년 4월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망루 두개가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등 굉장히 큰 손상을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이것을 완성했던 조선인 포로들의 저주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성의 손상이 자주 일어났고, 재건하면 다시 무너지는등 뭔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성을 힘들게 완성한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도 없고, 이후 이어진 포로들을 데리고 오는 일에도 소극적이었던 조선 조정의 정책 때문인지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수 없습니다.
이들의 고향인 울산과 구마모토는 생각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곳도 아닌데도 포로가 되었다는 이유로 오히려 포로들의 사상을 의심하며 데려오지 않았던 조선의 방침 덕분에 이들은 전혀 연고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이 지역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죽어갔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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