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7. 12:23ㆍ역사
금나라에게 나라의 절반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달아난 송나라는 지속적인 금나라의 침입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장강 이남에 위치한 건강은 남북조시대의 남조가 도읍으로 두었던 곳이라 험준한 지형과 방어가 엄중한 곳이었지만, 금나라의 왕자 김올출이 이끈 금군은 회수이북의 모든 땅을 빼앗고 장강을 넘어 건강까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모든 황족들이 금나라에 잡혀가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던 고종은 혼비백산하며 남쪽으로 도망갔고, 그러는 와중에 너무 놀랐던 모양인지 이런 도주과정에서 성기능을 상실하여 고자가 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도망친 송나라의 조정은 모든 권위를 잃어버리고 패주하였으며, 그나마 당시 유명한 악비가 이끄는 군대와 한세충 같은 장군들이 분전하여 금나라군을 북쪽으로 다시 밀어낼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쪽의 금나라군이 언제든지 쳐들어올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송나라 조정과 고종은 유서깊고 방어도 쉬운 건강을 버리고 그보다 남쪽의 항주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이곳은 유명한 항구도시이자 부유한 곳이었기 때문에 향락을 즐기기도 쉽고, 금나라군이 내려오기 시작하면 배를 타고 도망가기 쉬운 곳이었기 때문에 항주에 수도를 정하고 임안이라 이름까지 바꿔버렸습니다.
그렇게 국가를 이어간 남송이지만, 황제였던 고종의 생식능력이 없어 후사를 잇지 못하자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의 자손 중에서 황제가 될 이를 찾았고 그렇게 조신과 조거가 황궁에 들어가 황제가 되기위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이 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한 고종의 집념 덕분에 조신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로 책봉되지 못하다가, 결국 고종의 선택을 받고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1162년 송나라의 황제가 된 효종은 이후 나라일을 바로 올바르게 처리해 나갑니다.
즉위 초반에는 금나라에 빼앗긴 송나라의 옛 영토와 개봉을 되찾으려 전쟁도 일으키지만, 악비가 없는 송나라군은 금나라군에 연전연패할뿐 전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효종은 금나라와 화의를 맺게 됩니다. 그나마 금나라의 폭군 해릉왕이 섣부르게 송나라를 공격하다가 명장 우윤문에게 저지당하고 결국 처형당했는데, 이런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하고자 했던 금 세종과 화의가 이루어져 생각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화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송나라가 금나라에 평화를 위한 막대한 세폐를 바쳐왔는데, 그나마 새폐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이전까지 군신관계를 숙부와 조카의 관계로 완화시키는 선에서 금과 송의 화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송나라의 경제적 부담이 많이 경감되었고, 원래 부유하고 돈많은 지역인 강남지방을 중심으로 다시 송나라가 강국으로 일어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효종이 만들어 냈으니, 송나라의 입장에서는 효종이 큰 역할을 맡았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듯 합니다.
하지만 북방의 금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명군인 세종과 동시대에 재위했다는 점은 효종의 불운이었습니다.
아무리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정치를 개혁해도 금나라의 세종을 이길수 없었으며, 워낙 강력해진 금나라를 막는데 급급한 송나라였기 때문에 효종이 항상 가지고 있던 북벌의 꿈을 버릴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효종에게 양위하고 물러난 태상황 고종은 나라일에 간섭하는가 하면, 큰 돈을 들여 놀고먹기에만 열중했습니다.
아마도 양위한 이유는 자신이 좀더 눈치보지 않고 즐기는데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죽기 전까지 미녀들에 둘러쌓여 즐기는데 급급했다고 하니 정말 말년에 속편한 인생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절제한 생활을 즐기던 고종은 1187년 사망했고, 잇따라 효종의 아들과 딸들이 전부 요절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셋째아들인 조돈에게 양위하고 물러나 있다가 1194년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남송의 효종은 원래 황제와는 거리가 먼 황족이었지만, 고종이 고자가 되면서 황제가 될 기회가 생겼고 여색을 멀리하면서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준 끝에 황제가 될수 있었습니다. 그 자신은 능력이 괜찮았기 때문에 재위기간동안 큰 실수 없이 국가를 잘 이끌어 나갔지만, 하필 이웃국가에 세종이라는 명군이 나타나 뭔가를 해보지 못한 사실은 안타깝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거기에 효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종은 정신병이 생겨 아버지인 효종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등 괴롭히는 와중에 돌보는 이 없이 쓸쓸히 죽음을 맞았으니, 송나라를 다시 부강하게 만든 명군의 최후에 맞지않는 비참한 최후였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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