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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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문명의 증거,괴베클리 테페와 카라한 테페 유적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413856&memberNo=11880830&vType=VERTICAL 1만2천년 전 의문의 유적, 괴베클리 테페 [BY 중앙일보] 터키의 한 산맥 꼭대기에 있는 유적이 있다. 무려 50년 동안 발굴이 이뤄진 ‘괴베클리 테... m.post.naver.com 지난 1963년에 발견된 유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터키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유적이 심상치 않아보였는데,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가 조금씩 뒤집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11400년전 유적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카라한 테페에서 이곳과 비슷한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서로 비슷한 문명..
2022.04.11 -
백제 동성왕의 업적과 의문의 죽음
https://youtu.be/LlMj8jP8uAw 서기 475년 백제의 수도인 한성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함락됩니다. 그러면서 수도에 남아있던 개로왕과 왕족들은 전부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태자인 문주가 남쪽으로 도망쳐 웅진으로 천도한후 왕이 됩니다. 하지만 쫓겨내려온 군주라서 그런지 왕권이 약했고, 즉위한지 몇년 되지 않아 신하에게 암살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뒤를 이어서 문주왕의 아들 삼근왕이 즉위합니다. 나이는 어린 편이지만 국정운영의 감각이 있었던 왕이라서 기대를 해볼법했는데 15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게 되어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이것 또한 예상보다 출중했던 삼근왕의 능력에 놀란 귀족들이 암살로 처리한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나서 이제는 좀더 어린 나이의 동성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2022.04.09 -
전쟁에서 패한 댓가로 다가온 고려와 조선의 역사
금나라가 대륙에서 몽고군에 쫓겨 연전연패하고 있을 무렵, 고려도 몽고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고려 국경으로 쫓겨 들어온 거란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고려에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던 몽고였지만, 당시 고려의 공물을 독촉하고 돌아가던 사신 저고여가 피살된 것을 계기로 고려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1231년 시작된 고려와 몽고의 전쟁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특히 귀주성에서 박서와 김경손이 성을 잘 지켜 몽고군이 물러갔지만 국경의 철주나 통주같은 곳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포로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동안은 금나라 공략을 위해 고려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몽고지만 1232년 금나라의 개봉을 구원하러 움직이던 주력군 15만을 삼봉산에서 전멸시키게 되고, 금나라가 자랑하던 완안진화상..
2022.03.23 -
아편전쟁으로 살펴보는 청나라와 조선, 그리고 일본
https://youtu.be/dsJFlL4BN8A 청나라를 반석으로 올려놓은 강희제와 옹정제의 치세 후에 등극한 건륭제는 강건성세라는 미명으로 그의 통치기간을 미화하며 십전무공이라는 허황된 이름으로 되지도 않은 포장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결국 옹정제가 10여년간 재위하며 쌓아올린 청나라의 국부는 건륭제가 모두 소진하게 되며, 그 이후로 이어진 가경제와 도광제 치세에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함께 사회기강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과 교역하던 광동성의 광주에서 청나라의 비싼 비단이나 도자기, 차 등이 수출되었지만 청으로서는 별로 수입하는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무역의 불균형이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면직물이 값싸게 공급되고 있었지만 이미 청나라는 명..
2022.03.14 -
조선후기 치명적인 상처가 된 민씨척족의 만행들
조선후기 고종이 등극한 이후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정사를 맡아 처리한지 10년이 지나자, 그동안 세도정치와 조세수취의 문란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의 부담이 한층 적어졌습니다. 양반도 군포를 부담하고, 백성과 지방민들을 괴롭히는 서원을 철폐하는 등의 개혁정책으로 조선을 많이 바꿔놓은 대원군이었지만 뜬금없이 왕실의 권위를 세운다면서 대규모로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하고 나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반들와 부호들에게 기부금을 받아내고, 왕실의 내탕금까지 경복궁 중건비용으로 사용했지만 워낙 크게 중건을 시작한 덕분에 자금이 부족해졌고 결국 당백전이라는 상평통보보다 훨씬 비싼 가치를 지닌 돈을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을 야기했으며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고갈시키게 됩니다. 어차피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어지고..
2022.03.10 -
해방이후 일본의 삽질과 변하지 않는 야욕
오늘은 100여년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조상들이 들고일어났던 기미독립운동 기념일입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온갖 일제의 악행을 알리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사를 봐도 무덤덤해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그런 내용을 봐서 그런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일제가 해방 직후부터 우리에게 한 짓은 굉장히 악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38도선 이북은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바로 무장해제와 일본군을 와해시켰지만, 이남은 미군이 진주하기까지 시간이 약간 걸렸기 때문에 그동안 조선총독부에서 이런저런 장난을 쳤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의 경제를 망칠 목적으로 짧은 시간동안 굉장히 많은 화폐를 찍어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경제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워낙 많은 화폐를 찍어냈..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