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 12:37ㆍ역사
고려말 원나라의 세력을 축출하고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어가던 공민왕 시절, 고려는 남쪽의 왜구와 함께 북방에는 홍건적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중국 남방부에서 일어난 홍건적은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 조정을 압박하고, 결국 원나라의 수도 대도는 함락시키지 못했지만 여름수도인 상도 개평부를 함락시키고 온갖 물자를 약탈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원나라 정규군의 추격을 받게되자 동쪽에 있던 고려로 밀려들어오게 되었고, 이전에 있던 소규모의 침입은 고려군이 잘 방어해냈습니다.
그렇지만 1359년 이들이 20만여의 전 병력을 이끌고 고려로 다시 쳐들어오자 수비하던 고려군은 중과부적으로 전멸하고, 최영을 비롯한 장군들이 끝까지 송경을 수비할 것을 청했지만 성내의 수비가 약하다는 핑계로 공민왕이 복주까지 파천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송경을 함락시킨 홍건적은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임산부를 죽여 태아를 꺼내는등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는군요.
그래도 20만의 군사를 모은 고려군의 총공세에 결국 송경과 서경을 다시 내주고 패퇴하던 홍건적은 병력의 절반 정도인 10만 군사를 잃어버리고 남은 군사를 모아 도망쳤고 다시는 고려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싸움의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총사령관 정세운을 비봇한 안우, 이방실, 김득배 등이 핵심인사로 떠올랐고 경성수복공신으로 책봉되어 큰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엄청난 공을 세운 장군들이지만 이들은 곧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원나라 유배시절부터 공민왕을 모셔왔던 김용이 이들을 계략으로 제거한 것입니다. 먼저 조서를 꾸며내어 정세운이 안우의 손에 죽었고, 이방실과 김득배로 하여금 안우를 상관을 해친 죄로 죽이게 했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자신이 둘을 제거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엄청난 전공으로 인해 권신으로 떠오른 무장들을 제거한 공민왕의 친위쿠데타로 보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국가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무신들을 제거한 엄청난 권력투쟁사건이라고 보는게 좋겠네요.
이렇게 고려를 위해 싸운 장군들이 한꺼번에 넷이나 죽고난 이후 최영만이 고려를 위해 싸웠고, 20대의 젊은 나이였던 이성계가 급부상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이성계의 쿠데타때에는 고려를 위해 싸워줄 이름있는 장군이 최영뿐이었기 때문에 이성계의 불법적인 회군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주로 이런 명망있는 장군들이 적의 반간계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전국시대 말기의 조나라를 지탱하던 이목은 장평전투에서 46만의 병력은 잃은 조나라를 끝까지 지탱했고, 진나라의 기라성같은 장군들이 거느린 원정군을 패퇴시키는 전과를 올렸지만 당시 권신이던 곽개의 미움을 사서 죽게되고 결국 조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북위가 북제와 북주로 갈라져 싸우고 있을때 북제의 황제들은 하나같이 무능력한 인간들에 황음무도한 자들이었지만 당시 외척이었던 곡률광과 황족출신 고장공이 북주의 침입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북주의 반간계에 빠져 고장공과 곡률광이 죽게되고, 북제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북주의 무제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명나라 말기에 후금의 누르하치가 군사를 일으켜 요녕지방을 휩쓸때 지리멸렬하던 방어체계를 확립하고 민심을 다독인 웅정필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모두가 가기꺼려하는 요동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을 가진 웅정필은 명군의 각개격파를 막고 후금의 유격전에 대비하는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천계제의 총애를 받고 권세를 휘두르던 위충현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결국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형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산해관 바깥의 영원성에서 누르하치를 격파하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한 전공을 세운 원숭환도 이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후금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지속적으로 세우지만 당시 의심이 많던 숭정제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가도에 주둔하고 있던 모문룡을 독단적으로 처단한 것을 이유로 북경으로 압송되어 결국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 후에 원숭환이 터를 잡아 쌓은 영원성이 홍타이지에게 함락당하고 정예 명나라 군사가 5만 3천이 넘게 전사하는 패배를 기록하게 되면서 결국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반간계와 내부의 음모 때문에 죄없이 죽어간 신하들은 국가를 지탱하던 인물들인데, 이들이 죽고나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면 느껴지는게 많네요.
특히 고려를 지탱하던 안우와 김득배 등이 죽고나서 결국 고려가 망했고, 명나라를 지키던 웅정필과 원숭환이 죽고나서 명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면 충신을 죄없이 죽였을때 어떤 결과를 낳을수밖에 없는지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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