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를 뒤흔든 왜구의 존재

2022. 1. 4. 13:15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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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엽부터 동아시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왜구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해적집단이 존재했습니다.

신라 말에 당나라와 신라의 지방 장악능력이 약해지면서 해적이 출몰하여 신라인들을 잡아 노예로 당나라에 팔아넘기는 일이 횡행했고, 이 과정에서 당나라의 지방관리로 있던 장보고가 해적을 소탕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거기에 일본에는 신라구라는 해적집단이 나타나 연해를 노략질하고 사람을 납치했다는 기록을 보면 확실히 이 시절부터 해적의 존재로 고통받은건 한중일 3국이 동일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고려의 삼한통일과 함께 북송의 건국으로 점차 정국이 안정되면서 해적은 사라졌고, 이후 원나라 말기부터 다시 해적이 판을 치게 됩니다.

특히 왜구라 불리는 일본쪽 해적의 피해가 극심했는데, 원과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정벌에 나섰다가 태풍을 만나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난 이후 이런 침입이 극성을 부렸다고 합니다.

일본과 가까운 고려는 수도인 송경이 해안가와 가까웠기 때문에 내륙인 철원으로 천도를 고려했을만큼 정말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의 7년동안 일본과 전쟁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긴 했지만, 이 시기 침범해온 왜구에 시달린 고려는 정확한 피해규모를 어림잡지도 못할만큼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고려 수군은 건국 초기부터 태조가 수군으로 나주를 공략해 점령할만큼 강한 전력을 보유했지만 원나라에 복속되면서 일본원정에 동원되었고, 원나라의 지속적인 감시로 인해 군 전력을 늘리지 못했기 때문에 왜구를 더욱 막아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왜구가 고려를 거쳐 산동과 요녕을 공격하여 노략질을 일삼자 원 정부에서 고려에게 수군을 늘려 이들을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고려는 지속적으로 왜구를 토벌하였고, 최영과 이성계가 내륙까지 들어와 노략질하는 왜구를 황산과 홍산에서 크게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고, 최무선이 화포를 개발하여 진포와 관음포 등지에서 수군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격파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박위가 왜구의 소굴로 추정된 대마도를 정벌하여 막대한 타격을 주면서 이제 왜구의 주된 목표는 고려보다는 대륙으로 향하게 됩니다.

 

대륙에서는 주원장이 건국한 명나라가 북방의 원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북방에 치중하는 틈을 타 남방해안에 왜구가 출몰하여 큰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홍무제는 해상을 봉쇄하는 정책을 사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무역을 하지 못해 실업자가 된 상인들과 일꾼들이 왜구에 합류하여 중국 해안가를 습격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고, 명이 원을 북방 초원지대로 밀어내며 대륙을 장악하게 되지만 왜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왜구를 달래기 위해 삼포개항을 하여 정식 무역을 허락하지만 이들이 소란을 일으켜 삼포왜란이 일어나게 되고, 명종때에는 전라도 해안으로 쳐들어온 왜구를 막지못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을묘왜변 등 계속해서 피해를 입혔습니다.

거기에 명나라 가정제시기에 북방의 타타르와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왜구가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 절강과 복건 등지를 약탈하는 북로남왜로 고통받게 됩니다. 결국 명장 척계광이 이끄는 척가군의 활약으로 남방해안의 왜구를 소탕하게 되었고, 방어태세가 확립되면서 더이상 왜구의 대규모적인 약탈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왜구에 대해서는 단순한 해적을 넘어선 일본의 정규군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고려말에는 일본내에 남북조가 대치하면서 싸움에서 패하고 밀려난 무사들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려와 원나라를 약탈하게 되면서 더욱 극성을 부렸고, 나중의 명나라의 북로남왜 시기에는 일본의 전국시대에 땅을 빼앗긴 농민들과 무사들이 왜구로 변신하여 조선과 명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군자금으로 결국 1592년 내전을 마친 일본군이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했고, 이것을 막기위해 명나라의 정예병들이 출병하면서 막대한 재화를 소비하게 되니 결국 나중에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을 막지 못하고 명나라와 조선이 모두 무릎을 꿇게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지금 살펴보면 단순한 해적이었다고 볼수도 있는 14세기부터 나타난 왜구는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려에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면서 결국 고려가 무너지게 되었고, 명나라가 왜구를 막기위해 해금정책을 쓰는 바람에 동아시아 전체가 서양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왜구의 노략질로 국력이 높아진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게 되면서 조선과 명에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남겼습니다.

결국 그 이후 조선이 삼전도의 굴욕으로 청에 복속되었고, 명은 그렇게 풍요로운 강남을 가지고도 만주팔기를 막지 못하면서 망국으로 치달았으니 왜구가 불러온 동아시아의 파장은 정말 엄청났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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