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6. 12:18ㆍ역사
서진왕조의 치열했던 팔왕의 난이 결국 동해왕 사마월의 최종승리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더이상 싸울 사마씨 황족들이 남아있지 않아 싸움이 마무리 되었을뿐이고, 이제는 내전이 아닌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게 되는 서진왕조였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흉노의 후예인 유연이 먼저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유연은 그 비범한 능력 덕분에 낙양에 인질로 잡혀와 있었는데, 당시 권력을 잡고있던 사마소는 그를 총애했으며 다른 명사들과도 교류하면서 능력을 키워갔습니다.
이후에는 사마염이 위나라를 뒤엎고 서진왕조를 세워 결국 천하통일을 이루었는데,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신하들이 유연을 죽일것을 요청할 정도였지만 결국 사마염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서진의 지배층이 갈라져 팔왕의 난이라는 내전이 일어났는데, 유연과 그의 아들 유총은 능력을 인정받아 사마씨들의 용병으로 활약했으며 이러는 과정에서 북방 흉노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유연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흉노를 통일하고 한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서기 304년 완전히 자립하게 된 한나라는 서진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군대를 보내 북방 이민족들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서진왕조를 곳곳에서 공격하며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309년에 장평지역에서 있었던 큰 전투에서 서진의 군대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고, 그로인해 북쪽에서 낙양으로 내려가는 길이 뚫리고 말았습니다.
유연의 아들 유총은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 낙양을 포위했으며, 곳곳에서 사마월이 보낸 원군들을 격파하면서 낙양을 함락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항복해온 서진의 군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결국 낙양의 포위를 풀고 도망칠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1차 공방전은 서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해 10월에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내려온 한군은 서진조정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아직 근왕병도 북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낙양 일대가 포위되었습니다.
초반에 진나라군의 기습으로 장수가 전사하는 등의 피해를 입은 한나라군이었지만 유총은 다시한번 낙양성을 포위했고,공격을 퍼부었지만 높고 단단한 낙양의 수비를 뚫을수 없었습니다.
또한번 서진군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한군은 어쩔수 없이 사기가 떨어진 군대를 수습해 수도인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그렇게 2차 공방전마저 다시한번 서진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흉노족의 한나라를 건국한 유연이 310년 사망하고 유총이 쿠데타로 집권한 후에는 다시 서진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311년 이미 곳곳에서 진나라의 수비를 무너뜨린 한나라군은 또다시 낙양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나마 낙양성을 지키던 서진의 실권자 동해왕 사마월은 사망하여 수많은 군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버렸고, 그로인해 낙양의 수비는 더욱 취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거세게 이어진 공격에 결국 낙양의 성문은 돌파당했고, 서진의 회제 사마치는 도망치려다가 생포되었으며 낙양은 완전히 함락되어 악탈과 살인이 판치는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낙양성을 지키던 군사와 백성 3만여명은 전부 학살당해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서진의 역대 황제들의 무덤도 전부 파헤쳐져 부장품은 전부 약탈당하고 파헤쳐진 유골들이 나뒹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번만에 함락된 낙양성은 남아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예전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질러 파괴되었던것 이상으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소위 영가의 난이라고 불리는 이 재앙으로 결국 서진왕조는 철저하게 망했으며 그나마 남쪽으로 도망친 황족 사마예의 손에 의해 장강 이남에서 진나라가 재건되면서 본격적인 남북조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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