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최악의 암군 휘종과 흠종

2024. 10. 16. 10:1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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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는 조광윤이 건국한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산업중흥으로 세계의 부를 독점하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당나라 이후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통제되지 않는 절도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문치주의를 택해 문관을 우대하는 정책을 썼는데, 그것을 감안해도 송나라는 굉장히 허약한 국방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래도 송나라는 인종의 재위시절 최전성기를 맞았고, 인구도 크게 늘었으며 도성인 개봉 역시 세계 최대의 도시로 거듭나는등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했습니다. 다만 거듭되는 전쟁에서의 패배와 더불어 개봉 일대를 지키기위한 군사비의 증가, 사회적인 갈등 등이 겹치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신종과 철종이 개혁을 시도해 어느정도 국가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 뒤를 이어 즉위한 휘종이 송나라의 모든것들을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철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단지 외모가 단정하고 예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태후의 선택을 받은 휘종이 송나라의 군주로 즉위했습니다. 워낙 놀기좋아하는 휘종이라서 다른 신하들의 반대도 심하기도 했지만 송나라의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일개 시정잡배같은 초라한 능력을 자랑하는 그를 황제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신종과 철종이 어느정도 복구한 재정상태를 물려받은 휘종이지만, 바로 온갖 진귀한 물건들과 낭비로 인해 국고를 거덜내고 말았습니다. 전국의 기암괴석들을 모아 휘종을 위한 정원을 마련하고, 큰 바위를 운반할때는 백성들의 집을 헐어가면서 오직 수집에만 몰두하였으며 사람들이 가진 귀중한 서화들과 보물을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특히 휘종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채경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송나라의 기강은 완전히 흐트러졌고, 변방의 군대는 흩어지며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을 내지못해 거지가되어 떠돌다가 반란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시기를 그린 중국의 유명한 소설인 수호지는 송나라의 통치에 반항하며 도적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당시 휘종의 통치가 얼마나 혹독하게 백성들을 쥐어짰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런 휘종의 통치를 보다못한 방랍이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고, 금나라와 연합해 연운16주 일대를 되찾으려는 군대를 이쪽으로 돌려 반란을 간신히 진압하기는 했지만 이 군대는 지칠대로 지친 거란군에게 오히려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금나라가 멸망시킨 거란의 천조제와 다시 연합해 금나라를 공격할 계책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대규모의 공격을 받게 되었고, 휘종은 겁이났던 모양인지 아들인 흠종에게 자리를 넘긴후 남쪽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휘종의 아들인 흠종도 용렬하고 능력없는 인간이었던지라, 쳐들어온 금나라군에게 막대한 배상금과 북방의 영토를 할양하는 조건으로 금나라군을 물러나게 했는데 이후 주전파 신하들의 주장이 있자 덜컥 금나라와의 약속을 깨고 배상금과 영토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다시 쳐들어온 금나라군은 곳곳에서 모여드는 근왕군을 각개격파하며 도성인 개봉을 완전히 포위했고, 이렇게 포위된 상태에서 휘종이 모아온 기암괴석을 깨뜨려 성벽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흠종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인 휘종이 남쪽에 있으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까봐 수도로 데려온 상태였는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과대포장한 무뢰한에게 군대를 주어 적에게 돌격하다가 오히려 개봉의 외성을 내주는 상황에서 결국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개봉의 성벽 일부가 함락되긴 했지만 항복할 상황은 아니었고, 주전파 대신들이 끝까지 버티자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흠종은 항복을 결정하고 성문을 열어 포로가 되었습니다.

 

도성인 개봉은 모든 재물을 약탈당했고, 송나라가 그동안 백년넘게 모아온 재화들과 휘종이 그렇게 열심히 모은 문화재들도 몽땅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의 북방인 오골성에 유폐되어 혼덕공과 중혼후라는 모욕적인 칭호를 받고 죽을때까지 추운 북방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남쪽에서 송나라를 다시 일으킨 남송이 건국되며 휘종의 죽은 시신은 송나라로 되돌아갔지만, 흠종은 결국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금나라의 폭군인 해릉왕의 손에 그의 후손들마저 전부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휘종은 절대 군주가 되었으면 안되었을 무능력한 인간이었고, 그나마 흠종은 아버지에 비하면 낫긴 했지만 너무 주어진 시간이 없었으며 생각없는 결정으로 송나라의 멸망을 부채질했습니다.

결국 이들 부자 덕분에 경제력에 몰빵한 송나라는 정강의 변이라는 허울좋은 이름과 함께 망했으며, 남쪽에서 고자가 된 휘종의 아들 조구가 남송을 세우고 금나라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기에 바빴으니 이들 휘종과 흠종의 죄는 씻을수 없을만큼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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