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9. 11:38ㆍ역사
금나라의 세종은 묘호에 어울리는 명군이었습니다.
해릉왕의 폭정을 끝내고 즉위한 세종은 오랫동안 재위하면서 금나라의 국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그로인해 남쪽의 송나라 역시 명군인 효종이 즉위했지만 금나라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 대치중이었습니다.
다만 세종의 재위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태자가 먼저 죽었고, 그로인해 황태손이었던 장종이 세종의 선택을 받아 금나라의 6대 황제로 즉위한 것입니다.
장종은 할아버지인 세종이 물려준 탄탄한 재정과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금나라의 전성기를 이어갔습니다. 거기에 남송으로부터 받는 막대한 세폐를 통해 재정상태도 나쁘지 않았지만 점차 그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금나라의 북쪽에는 몽골부족들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각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몽골부족들은 거란의 요나라가 분열과 책봉을 통해 통치하고 있었는데, 금나라 역시 이런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력해진 몽골부족은 공격해 약화시키고 약한부족은 물자를 공급해 서로의 세력균형을 꾀하는 정책을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금나라의 오랜 평화로 인해 몽골일대의 부족들이 강력해지기 시작했고, 금나라의 통치는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몽골초원의 군대들이 연합해 금나라를 공격해 들어오니 북방의 평화가 깨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서쪽의 서하와도 관계가 소원해져 갈수록 군대를 위한 비용이 들어가고, 수비를 위한 군대를 늘리기위한 증세가 계속되자 결국 사회각층에 만연해진 불만들이 터져나오며 금나라는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나마 세종의 치세에 워낙 훌륭한 통치를 보여준 금나라에 반기를 드는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세종의 손자인 장종은 이런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금나라의 상황이 좋지 못하자, 남쪽의 송나라는 권신인 한탁주가 집권하면서 북벌을 계획하게 됩니다.
자신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에서 송나라의 원수인 금나라를 이기게 된다면 자신의 지위를 다질수 있을거라 생각한 한탁주는 남송조정을 선동해 북벌군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미 약화되기 시작한 금나라군조차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송나라군의 실력을 확인할수밖에 없었고, 북벌군이 오히려 패배하고 사천일대의 정예군들을 앞다투어 금나라에 항복해버리니 결국 송나라는 그동안 끊었던 막대한 세폐를 다시 보냄과 동시에 한탁주의 머리를 소금에 절여 금나라로 보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장종은 이렇게 올라온 한탁주의 머리를 수도에 내걸며 본보기를 보였고, 종묘에 이런 사실을 고하며 금나라의 큰 승리를 선포하게 됩니다.
이렇듯 장종은 큰 실수없이 국정을 운영했지만, 사생활에서의 큰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한족여성인 이사아는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을 뽐냈지만 황실에 소속된 노예였는데, 장종이 그녀를 총애하여 원비로 책봉했고 이사아의 가족들 역시 큰 벼슬자리를 차지하면서 국정에 영향을 끼치고 뇌물을 받는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거기에 장종이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후사를 걱정하게 됩니다.
자식이 없던 장종은 죽기전에 자신의 숙부인 위소왕과 거래를 하게 되는데, 이미 돌이킬수 없는 병에 걸린 자신의 뒤를 이어 숙부인 위소왕이 즉위했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후궁이 낳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말도안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조카가 항렬을 거슬러 숙부에게 황제자리를 물려주는것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거기에 나중에 위소왕이 장종의 아들에게 순순히 자리를 물려줄리도 없을텐데도 이런 말도안되는 거래를 한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장종이 1208년 40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후사는 위소왕이 이었고, 그렇게 황제가 된 위소왕은 이사아와 장종의 아이를 임신한 후궁을 전부 처형하면서 장종과의 약속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가버렸습니다.
이미 약화되기 시작한 금나라를 되살리지 못한 장종이었지만, 그 뒤를 이은 위소왕 역시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이라 금나라는 완전히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몽골에는 칭기즈칸이 등장해 그 일대를 통일하고 금나라 공략을 시작해 곳곳이 몽골의 공격을 받게되었으니 훗날 금나라 멸망의 단서는 장종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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