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은 출중했지만 결국 파멸하고만 이존욱

2024. 5. 4. 11:4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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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지역을 차지한 주온은 당나라의 중요지역을 점거하면서 기세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북방의 이극용은 주온의 가장 큰 경쟁자였고, 이극용이 죽으면서 생긴 공백을 이용해 주온이 양나라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공격하게 됩니다.

한편 이극용의 진나라를 계승한 이존욱은 당시 24세라는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주온의 주력부대를 무찌르며 이름을 크게 알렸습니다.

그렇게 패배하여 남쪽으로 쫓겨간 주온은 항상 이존욱의 존재를 두려워했으며, 그의 아들들이 전부 칠칠지못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건국한 양나라가 멸망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승계한 이존욱은 정식으로 진왕이 되었고, 이후부터 사방의 적들과 싸웠습니다.

지금의 북경일대에서 할거하던 유수광은 자립하여 연나라를 건국하고 황제를 자칭했는데, 이존욱은 유수광을 공격하여 연나라를 접수했으며 사로잡힌 유수광은 한칼에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창 후량과 대치하면서 유리한 국면을 맞았던 이존욱이지만, 그때 한창 떠오르던 거란의 야율아보기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미 아버지인 이극용 시절부터 거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악연이 있었는데, 비로소 이존욱이 거란을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잘 훈련된 군사를 이끌고 거란을 곳곳에서 격파한 이존욱의 지휘아래, 결국 거란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다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발해와의 전투에서 패배한것을 제외하면 다른곳에서 패배하지 않았던 야율아보기도 이존욱의 실력을 체감하면서 물러났고, 결국 거란은 발해와의 전투에 전념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북방의 위협을 제거한 이존욱은 당나라 조정도 통제하지 못했던 위박번진 마저 제압했고, 양나라의 마지막 명장인 왕언장과의 전투에서도 승리하며 후량의 군주였던 주우정을 압박합니다.

주우정은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못하고 그가 잡아가둔 형제들을 처형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왕언장을 비롯한 명장들을 스스로 내치며 오히려 이존욱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양나라의 수도인 개봉은 이존욱에게 포위되어 결국 함락되었고, 주온이 세운 후량은 결국 16년만에 멸망하면서 이존욱이 새롭게 당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국호를 당으로 하는 후당을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후당을 건국하고 황제가 된 이존욱이었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싸우는 능력은 있어도 국가를 통치하고 경영하는 능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탐관오리로 유명한 공겸을 중용하여 곳곳에 세금을 부과해 백성들을 쥐어짰으며, 길을 걷거나 배를 타는 등의 일상적인 곳에서도 높은 세금을 물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이렇게 너무 세금을 물리지 말것을 건의할 정도였다고 하는데도 공겸이 가져오는 막대한 돈을 좋아한 이존욱은 이런 건의도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좋아한 이존욱은 이천하라는 이름까지 만들어 자신을 연극배우로 생각했으며, 이때 함께 이존욱과 놀아난 배우들은 이존욱의 환심을 사 후당의 정사를 좌지우지했다고 하니 정말 군주로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또한 황후로 책봉한 유황후는 부정축재와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더욱 후당의 정사를 어지럽혔고, 백성들을 전혀 돌보지않아 수도인 낙양에서도 온갖 보물을 가지고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불만이 쌓이던 황제의 친위군은 결국 참지못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극용의 양아들이었지만 능력있는 이사원을 추대하여 이존욱을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존욱은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갔으며,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도망친 유황후 역시 백성들에게 잡혀 비참하여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정말 뛰어난 무인으로서의 능력으로 결국 작은 지방정권으로 시작한 이존욱은 사방을 위협하던 거란의 야율아보기도 물리치는데 성공하고 결국 가장 큰 경쟁자인 양나라를 제압한후 사천지방의 전촉까지 차지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결국 국가를 통치하는데 실패하면서 비참하게 죽고말았습니다.

능력 자체는 5대 10국에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후주의 세종과 비견될 정도였지만, 결국 후당을 건국하고 황제가 된지 3년만에 권력을 잃고 친위군의 쿠데타로 죽고 말았으니 좋은 군인이 훌륭한 군주가 되는것은 아닌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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