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개차반이었던 선조의 아들들

2024. 4. 3. 12:0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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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4대 군주인 선조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조라는 묘호가 아까운 인물입니다.

물론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는 탁월한 감각과 결단으로 각지에 인재들을 배치하고, 서인과 동인의 싸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왕실과 자신의 권위를 높였으며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등 나름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을 통해 그의 단점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맙니다.

도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기는 커녕 정신못차리고 북쪽으로 도망치기 바빴고, 거기에 온갖 의심병이 돌아 의병장들을 죽이고 권한을 축소했으며 이순신을 비롯한 명장들을 파직하거나 자신의 말만 잘 따르는 원균같은 소인배들을 기용하여 힘들게 육성한 수군을 날려먹는등 전쟁기간에는 완전히 밑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그래도 분조를 운영하며 민심을 다잡고 각지의 의병들을 모으며 군사를 지휘한 차남 광해군의 노력 덕분에 조선은 점차 상황이 나아졌고,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과 조선군의 선전이 합쳐지며 왜군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또한 명나라에 빌다시피하며 불러온 원군들이 평양성을 탈환하며 승리를 거두었고, 정유재란에서는 전라도가 완전 함락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점차 상황은 조선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이렇게 차남이자 세자인 광해군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켰지만, 그를 제외한 선조의 아들들은 하나같이 인성이 좋지 않은 싸이코패스들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연장자인 임해군은 원래대로라면 세자가 되어야 할 인물이었지만 얼마나 비뚤어진 삶을 살았던 것인지 아무도 그를 세자로 책봉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의 동생들인 정원군과 순화군 모두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며 재산을 빼앗는 것을 예사로 여길만큼 막장인생들이었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상위권을 달리는 임해군은 워낙 행실이 좋지 않은 인물로 유명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아들들을 각지로 보내 의병을 모집하게 했는데, 임해군은 함경도로 파견되어 의병을 모으는 일에 투입됩니다. 하지만 의병을 모으기는 커녕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함경도 일대의 백성들을 괴롭혔으며, 재산을 빼앗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강원도로 파견되었지만 이미 모두 왜병에 짓밟힌 후였기 때문에 그곳에 파견되었던 순화군이 임해군을 찾아왔는데, 이 둘은 여기에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으며 민심을 잃어버렸고 결국 백성들의 손에 잡혀 함경도로 밀고 올라온 가토 기요마사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쯤되면 자신의 행적을 뒤돌아보고 반성해도 부족하지만, 전쟁 이후에도 임해군의 막장행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약탈과 강도, 살인을 일삼았으며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착복하는등 전쟁 전과 비교해도 좀더 심해진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임해군이라는 사람은 정말 구제불능의 쓰레기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왕이 된 광해군의 손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 더욱 많은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능양군의 아버지이자 막장이라면 빠지지 않는 정원군도 그에 못지 않은 인물입니다.

선조실록에서는 온갖 악행에서는 임해군과 순화군에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광해군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능양군 인조도 실록의 기록을 바꾸지 못할만큼 그의 악행이 기록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정원군 역시 과거에 처남을 합격시키는 부정을 저질러 탄핵되었고, 뇌물을 받고 군역기피자를 숨겨주는가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재산을 빼앗으며 납치와 살인을 일삼았다고 하니 그 역시 임해군에 뒤지지 않는 범죄자이자 악당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나마 정원군은 광해군의 비위를 맞추며 살다가 39세의 나이로 죽었고, 이후 능양군의 추존을 받아 원종이라는 시호까지 받았으니 임해군이나 순화군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짧은 삶을 산 순화군은 셋중에 나이가 가장 어렸지만, 제일 잔인하고 생명을 우습게 알았던 싸이코패스였습니다. 이미 어렸을때부터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죽이는것을 일삼아 선조가 걱정한 정도였다고 하니 어렸을때부터 싸이코패스의 기질이 보였던 모양입니다.

13살이 되던 해에 전쟁이 일어나 강원도로 파견되었다가 함경도로 옮겨갔는데, 이곳에서 어찌나 사람을 죽이고 괴롭혔던지 백성들에게 형과 붙잡혀 왜장 가토에게 포로로 잡힐 정도였습니다.

왜군들조차도 함경도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이들을 사람취급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회담의 결과로 조선에 돌려보내지긴 했지만 순화군의 성격은 더욱 포악해졌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을 무렵부터 이미 살인을 하고 있었고, 이것 덕분에 탄핵당할만큼 그의 막장행각은 멈출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후에는 1년에 열명 정도는 계속 죽였을만큼 그의 싸이코패스같은 성격은 아무도 못말릴 정도로 심각해 보입니다.

사람을 너무 괴롭히고 죽이자 막장이던 임해군이 그를 나무라자 형님처럼 사람을 때리지만 재산은 빼앗지 않는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을만큼 임해군과 순화군은 서로 경쟁하듯 이런 포악질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결국 순화군은 너무 못된 짓을 많이 하다가 가택연금되어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했다고 하며, 울분이 쌓여 중풍에 걸려 치료도 못받는 상황에서 26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선조조차 중풍으로 거동이 힘들다는 보고를 받은후에도 별다른 치료에 대한 언급도 없는것으로 보아, 아버지조차 아들을 방치할만큼 순화군은 구제불능의 막장인생이었던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은 아버지인 선조의 책임입니다.

처음부터 강력하게 처벌하여 아들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면 임해군과 정원군, 순화군이 이런 포악한 짓을 하지 못했겠지만 제대로 된 처벌없이 봐주기만을 거듭하니 이들을 그냥 방치한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이들은 탄핵하고 처벌할것을 강력히 주장해도 무시하거나 오히려 선조 자신이 보호하는듯한 모습을 보였으니, 이런 싸이코패스같은 인간들이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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