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찬탈자에서 명군으로 거듭난 요한네스 치미스케스

2024. 3. 22. 11:2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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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제국은 동쪽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에 밀려 동방지역의 중요한 영토를 모두 잃었습니다.

특히 제국을 먹여살리던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일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수세로 몰리면서 수도인 콘스탄니노폴리스까지 여러번 포위당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가까스로 수도를 지키는데 성공했고 이후에는 오히려 반격을 가해 잃어버린 동방영토를 되찾는 중이었습니다.

 

니케포루스 2세는 사라센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뛰어난 전공을 올렸고, 그로인해 군부의 추대를 받아 동로마제국의 황제까지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전쟁에서의 뛰어난 지휘능력과는 달리 내치와 외교에서는 실수를 거듭했고, 결국 이것이 그의 파멸을 이끌고 말았습니다.

요한네스 치미스케스는 925년경 귀족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거듭되던 시기 장군이 된 그는 전쟁에서는 용맹하고 겁이 없었지만 평상시에는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았고, 여자와 포도주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이슬람세력과의 전투에서 여러차례 전공을 올린 요한네스였고, 마침 자신의 상관이자 외삼촌인 니케포루스 2세를 황제로 추대하는데 공로를 인정받긴 했지만 점차 황제의 의심을 사고 말았습니다.

 

특히 니케포루스 2세의 황후인 테오파노와 불륜관계를 지속하다가 황제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자신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요한네스는 결국 황제 암살을 기도합니다.

969년 12월 요한네스는 수십명의 암살자들과 함께 황제를 기습했고, 자다가 봉변을 당한 니케포루스 2세는 잔혹하게 칼을 맞고 사망해버렸습니다. 자신의 상관이자 외삼촌이었던 황제였지만, 그의 야심에 희생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원래 요한네스는 테오파노 황후와 결혼하며 황제가 되려 했지만, 정교회의 반대로 황후는 외딴섬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아르메니아의 변경으로 쫓겨나는등 권력에서 밀려났으며 요한네스 치미스케스는 바라던대로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추악한 찬탈자에서 황제로 거듭난 요한네스는 우선 정교회 총대주교였던 폴리에욱투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귀족들의 토지를 늘리는것을 막는등 민생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았던 요한네스에 도전하는 귀족들의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이미 민심을 얻은 황제를 이길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국내정세가 안정되자, 요한네스 치미스케스는 국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때 동로마에 인접했던 불가리아는 키예프공국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고 군주가 포로가 되는등 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콘스탄니노폴리스까지 진격하려는 키예프의 군대를 동로마군이 막아섰고, 아드리아노플에서 대승을 거두며 키예프의 대공인 스뱌토슬라프는 정신없이 불가리아로 퇴각해야 했습니다.

971년 가을무렵 요한네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불가리아로 진군해 수도인 프레슬라프를 점령하고 키예프군을 궤멸시켰으며 도시는 전부 약탈당하고 불태워져 폐허만 남았다고 합니다.

불가리아의 차르였던 보리스 2세는 다시 동로마의 포로가 되었으며, 키예프의 잔여병력을 모두 소탕하고 불가리아 전역을 동로마의 영토로 만든후에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서방쪽이 안정되자 이번에는 동방쪽으로 진군하게 됩니다.

974년 정예병을 이끌고 동방으로 향한 요한네스는 안티오키아를 거쳐 메소포타미아까지 진군합니다.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인 다마스쿠스와 베이루트 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고 점령했으며, 예루살렘까지 진군하기는 했지만 이곳은 공략에 실패하며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성공적인 원정을 마친 975년 요한네스는 귀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병에 걸려 눈에는 피가 흐르고 온몸에는 고름이 뒤덮이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는 전장을 누비며 사라센인들을 학살한 수장이었지만 빠르게 건강이 악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귀환하는 도중에 불화가 생긴 시종장 바실리우스 레카피누스가 음식에 독을 탔다는 소문부터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면서 악화된 건강이 이때 드러난 것이라는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확실히 뭔가 의도하지 않았던 원인으로 요한네스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으며, 976년 1월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앞에 두고 51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겨우 7년이라는 길지 않은 재위기간을 가진 요한네스 치미스케스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업적을 남긴 황제였습니다.

비록 전임황제인 니케포루스 2세를 잔인하게 죽인 찬탈자였지만, 귀족들을 억누르며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폈고 동로마제국을 위협하던 불가리아와 당시 최전성기를 맞아 강력했던 키예프를 물리치고 영토를 개척했습니다.

거기에 당시 동방의 강자로 군림하던 파티마왕조와 싸워 이겼으며, 동로마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메소포타미아 일대와 시리아의 많은 땅까지 다시 찾는 쾌거를 올렸으니 업적은 결코 적다고 할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신장된 국력을 토대로 이후 황제를 승계한 바실리우스 2세 시기에 동로마제국은 완전한 전성기를 맞게 되니, 이런 제국의 전성기에는 요한네스 치미스케스의 지분도 상당히 크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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