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부에게 황제자리를 빼앗긴 명나라 건문제

2024. 2. 9. 11:56역사

반응형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선장과 남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10만에 가까운 사람을 죽였습니다.

단순히 반란을 획책한 호유용의 가족과 구족을 죽이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호유용의 정치적 스승인 이선장과 관련된 인물들을 전부 죽였고, 자제력을 잃고 교만해진 남옥을 죽일때도 관련자들을 봐주지 않고 전부 죽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주원장을 비판하거나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전부 죽였기 때문에 주원장 재위 후반부에는 조정에 사람이 없고 바른말하는 신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주원장의 대숙청은 아들과 손자를 위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왕조를 새로 창건하게 되면 아들이 이어받아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주원장의 아들인 주표는 나약하고 너그러운 성격이었기 때문에 주원장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안정된 국가를 물려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표가 일찍 사망함에 따라 그의 아들이자 주원장의 손자인 주윤문이 후계자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로인해 주원장은 더욱 숙청에 열을올려 손자에게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죽이는데 여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명나라를 세운 영웅 주원장이 사망하고 손자인 주윤문이 승계하여 건문제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주원장이 열심히 숙청한 관료집단과 공신세력은 약해졌지만, 건문제의 숙부인 주원장의 26명이나 되는 아들들은 각지에서 번왕으로 임명되어 군사력을 틀어쥐고 건문제의 가장 큰 근심거리로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북경지역에서 몽골의 잔여군사들과 싸우고 있던 연왕 주체는 가장 큰 위협이었고, 그를 제거하는것이 건문제의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주체를 바로 제거하기에는 겁이 났던 것인지, 건문제는 가장 세력이 약하고 행실에 문제가 있던 주왕 주숙을 기습하여 번국을 없애고 중앙으로 편입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약한 번왕들부터 차례로 제거해나가자, 연왕 주체는 위기감을 느끼고 그때부터 반란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주체는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면서 명나라 중앙군을 깨뜨리긴 했지만 워낙 중앙정부에 힘이 실려있던 상황이라 강력한 연왕군도 도처에서 패배하였으며, 특히 명나라에 반기를 든 반란군인 연왕을 공개적으로 도와주는 번왕들도 없는 상황이라 수세에 몰리게 됩니다. 

거기에 작은 승리에 도취된 건문제는 연왕을 절대 죽이지 말고 생포해서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라는 어이없는 명령까지 내렸으며, 이로인해 정부군의 작전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원장이 실시한 거듭된 숙청으로 명나라군의 고급 지휘관들이 부족했던 점도 명나라 중앙군의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거기에 그나마 유능한 장군이었던 경병문이나 곽영에게 지휘를 맡기지 않고 이경륭이라는 졸장에게 정부군의 지휘를 맡기면서 결국 연왕군에게 대패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강을 건너 명나라의 수도인 남경은 포위되었고, 연왕과 내통한 환관들이 성문을 열었기 때문에 결국 남경은 함락되었습니다. 주원장이 환관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하였기 때문에 이때 반감을 가진 환관들이 연왕에게 항복했고, 결국 성벽까지 열어 남경성이 함락된 것입니다. 그로인해 즉위한 연왕 주체는 이후 환관세력을 중용하였고, 이들 환관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명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황궁에까지 번진 대화재로 인해 남경은 참혹한 상태였다고 하는데, 황후의 시체는 까맣게 타버린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건문제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야사로 전해지는 내용에 따르면 주원장이 죽기전 건문제에게 상자 하나를 주며 긴급한 시기에 열어보라고 했다는데, 나중에 건문제가 남경이 함락되는 시점에 상자를 열어보니 승복과 목탁이 들어있어 승려로 변장하고 황궁을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건문제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곳곳을 연왕군이 뒤졌지만 건문제의 존재조차도 확인할수 없었고, 그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왕 주체는 끝까지 정통성없는 찬탈자로 남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체는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로 즉위하긴 했지만 그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방효유같은 유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결국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대숙청을 실시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수도마저 자신의 근거지였던 북경지역으로 옮겨 남경일대의 건문제에 대한 소문을 애써 무시해버렸고, 나중에 환관 정화에게 대함대를 맡겨 원정을 보내면서 건문제의 소식을 알아보고 그를 체포할것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영락제에 의해 정난의 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반란사건으로 결국 영락제는 집권하는데 성공했지만 건문제의 시체도 발견하지 못했고 체포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명나라의 미스테리로 남았습니다.

고려왕조의 순종이나 조선왕조의 단종 역시 숙부에게 찬탈당하며 비슷한 역사를 보여주긴 했지만, 이렇게 치열한 내전을 거쳐 조카의 자리를 빼앗은 사건은 정난의 변이 유일합니다.

 

또한 정난의 변을 막지 못하고 번왕들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으며, 강력한 중앙군과 지지세력을 가지고도 숙부에게 패해한 건문제 역시 동정은 받을수 있을지언정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그나마 영락제의 후손들이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점을 많이 보였고, 영락제가 중용한 환관들에 의해 명나라가 다시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나마 이런점에서 건문제가 그대로 승계했다면 명나라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