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일본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김상옥

2024. 1. 20. 12:16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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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S5VD5Aa6AQ?si=uS1eK4XSNal1dSAy

 

https://youtu.be/OOn5p7iVjGg?si=BRfGsC1p_r2pqg3Z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총격장면이 나오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손에 권총을 쥐고 양손으로 난사하는 장면은 주윤발이나 유덕화 등 여러 배우들이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이고,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굉장히 멋지면서도 남성적인 장면이라 더욱 가슴뛰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와는 달리 이것은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이라고 합니다.

권총 자체가 사거리가 짧고 한손으로 발사했을때 정확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미군들도 권총은 근거리에서 사용하는 무기로 인식하고 훈련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기술로 일본 경찰들과 맞서 상당수를 죽이고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한국인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당시 조선인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데 열을 올리던 종로경찰서의 일본인들을 습격하여 사살하고 그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김상옥 의사의 일화를 보면 정말 가슴이 뜨거워지는 점을 숨길수 없을 정도입니다.

 

김상옥은 1890년 조선이 점차 운명을 다해갈 무렵 태어났습니다.

군관이었던 아버지 김귀현과 어머니 김점순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상옥이었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고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였고 이후에는 철물점을 설립하여 금방 큰 규모로 키워내는 등 사업적인 수완도 좋은 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1919년 일어난 대규모의 기미독립운동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혁신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일본 관리들이나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암살을 기도하였고, 일본 경찰을 습격해 무기를 빼앗는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20년에는 사이토 조선총독 암살작전을 진행하다가 발각되고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갔고, 항일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의열단에 가입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가 1923년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해 국내로 잠입한 김상옥은 기회를 엿보았지만 일본경찰의 엄중한 감시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일본경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당시 조선인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그들의 시선을 돌리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밀고로 인해 김상옥의 소재가 파악되었고, 일본경찰들이 집을 포위하자 양손에 권총을 들고 싸우면서 도망치게 됩니다. 종로경찰서의 악명높았던 다무라와 우에다를 사살하고 도주했으며, 옥상으로 올라가 지붕을 넘나들면서 일본경찰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피해 남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찰만으로 한계를 느낀 일본군이 출동해 남산을 포위했지만 승려로 변장해 산을 내려온 김상옥은 동상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고 새로운 기회를 엿보던 1월 22일, 결국 다시 소재가 노출되며 일본경찰 400명이 겹겹이 포위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지붕을 뚫고 들어온 일본경찰을 맞아 벽장에 숨어있던 김상옥은 권총으로 앞장선 일본경찰을 쏘아죽이고 벽을 뚫고 도망쳤으며, 세시간 반동안 일본경찰들과 대치하면서 총격적을 벌이다가 결국 총알이 바닥났고 한발 남은 총탄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했습니다.

 

그렇게 김상옥은 자결했지만 워낙 시달린 일본경찰은 그의 어머니를 불러 시신을 살펴보게 하였으며, 나중에 시신을 확인해보니 열개의 총알이 몸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세시간이 넘는 총격전에서도 일본경찰을 사살했으며 열발 정도의 총을 맞고도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으니 김상옥의 의지가 어땠는지를 잘 알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당시 김상옥의 의거는 당시 기미독립운동이 좌절되고 무력감을 느끼던 조선인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벌어지는 항일무력투쟁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일본경찰과 군대 천여명이 그를 포위하고 대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압하지 못했고, 결국 오히려 심리적으로 일본군경을 위축시키고 두렵게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김상옥 한명의 의거는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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