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최대의 개국공신 서달

2024. 2. 2. 13:0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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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사회의 맨 밑바닥 출신이면서도 귀족들을 제치고 황제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황제가 된 후에도 귀족출신들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며 숙청하기를 반복했느데,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아 천수를 누린 개국공신 서달은 굉장히 특이한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달은 원나라 말엽 몽골이 한창 강남지역을 수탈하고 있었을 무렵인 1332년 안휘성 봉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소를 치는 목동으로써 주원장을 우두머리로 한 무리로 몰려다녔고, 이후에 주원장이 홍건군에 들어가자 서달 역시 주원장을 따라 홍건군에 합류하여 그의 경력이 시작됩니다.

주원장이 장강을 따라 남하해 중요한 요새인 진강을 점령하는데 공을 세웠고, 남경을 공략해 오왕이 되는 과정에서도 서달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 후인 1363년에 있었던 주원장의 가장 큰 라이벌인 진우량과 파양호에서 대규모의 해전을 지휘했고, 결국 진우량을 격파하고 장강일대를 주원장의 세력권으로 편입하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강남일대에서 주원장과 맞서던 유일한 세력인 소주의 장사성 역시 1366년 서달이 격파했으며, 이듬해인 1367년에는 명나라의 25만 대군을 이끌고 원나라 정벌에 나섰습니다.

파죽지세로 올라간 명나라군은 서달의 지휘아래 연전연승했고, 각지로 흩어진 원나라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채 후퇴해야 했으며 결국 원나라 순제는 수도인 대도를 포기하고 북쪽의 응창부로 피난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응창부에서 순제는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하고, 그때 들이친 명나라군에 의해 모든 보물과 옥새를 빼앗기고 원나라의 태자만 몸을 간신히 빼내 도망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통일왕조인 원나라를 밀어내고 다시 천하를 통일한 명나라는 북방을 수비하기 위해 북경지역에 연왕 주체를 주둔시키고 서달 역시 이곳에 주둔하며 쫓겨 도망간 몽골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평생동안 한번도 전투에서 패한적이 없던 서달은 완전히 몽골을 끝장내기 위해 북벌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섰지만, 몽골의 마지막 명장인 코케 테무르의 작전에 걸려들어 주력군이 궤멸되고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평생동안 큰 공을 세웠던 서달의 입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그저 북방 장성을 수리하고 산해관을 설치하면서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서달의 역할은 줄어든 때에, 주원장을 공신들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명나라 건국의 3대 공신으로 꼽히는 유기와 서달은 물러날때를 알고 적당히 물러났지만, 이선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호유용을 비롯한 신하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권력을 놓지 않다가 결국 반란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기에 서달과 함께 군사를 지휘하면서 큰 공을 세웠던 남옥도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제거되었으며, 이 두 사건으로 인해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와중에서도 서달은 목숨을 보존하여 주원장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러는 사이 주원장은 고려가 원나라로부터 탈환한 동녕부와 쌍성총관부 일대의 땅을 편입하겠다며 철령위를 설치했고, 그로인해 고려군이 요동정벌군을 조직하여 침공해왔다가 이성계의 반역으로 고려왕조가 뒤집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성계와 최영이 이끄는 정예고려군과 서달이 길러낸 강력한 명나라군의 전투를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루어지지 못한 전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때 이성계의 반역이 고려는 물론 우리 역사를 후퇴시킨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달은 고려의 요동정벌 직전쯤인 1385년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가 도져 등창으로 사망했습니다.

유기 역시 주원장의 시기질투 때문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은데 반해 서달은 그래도 끝까지 목숨을 보존하는데 성공했으니 명나라 개국공신중에서는 가장 보신에 능한 인물이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수많은 이들을 죽인 도살로 인해 인간백정으로 불렸던 주원장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서달이 죽은후에는 후손들이 그의 작위를 세습하고 명나라 멸망시기 까지 귀족집안으로 통할 정도였다고 하니 서달만큼은 명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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