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7. 11:16ㆍ역사
한나라의 7대 황제가 된 무제는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동안 한나라는 북방의 흉노에 밀려 꼼짝도 못하고, 그저 숨죽이며 송나라처럼 막대한 세폐를 주면서 전쟁이 나지 않기를 기원할 뿐이었지만 무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무제는 북방의 흉노와 전쟁을 벌였고, 불세출의 명장인 곽거병이 이끄는 한나라군이 흉노를 패망시키고 그들을 정복하여 결국 흉노는 서쪽으로 쫓겨났으며 결국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사에 등장하여 로마를 멸망시키는 커다란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나라의 전성기를 연 무제였지만, 막대한 전비와 지출로 인해 국가는 완전히 파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복활동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의 군대는 동쪽 조선까지 오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단군조선이 해체되고 분열중이었는데, 당시 번조선을 강탈한 위만이 위만조선을 세워 한나라와 대치중이었습니다. 위만이 죽고 그의 손자인 우거왕이 통치하던 위만조선은 주변 열국들과 한나라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고 영토도 크게 확대했는데, 이 상황에서 한나라는 당시 부여와 접촉하여 위만조선을 견제하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는 위만조선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나라 무제는 양복과 순체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육군 5만과 수군 7만을 이끌고 위만조선을 공격했는데, 한동안 한나라군은 위만조선군의 방어에 막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패수 근처에 위치한 위만조선의 도읍 왕험성을 공격했지만 결국 패하고 물러났으며 순체가 이끄는 수군마저 격퇴하여 한나라군은 패전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휴전을 위한 협상이 결렬되고 한나라군은 다시 왕험성을 포위했는데, 우거왕은 양복과 순체를 이간질하는 계책을 사용해 공격이 어렵게 만들며 버티게 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부 대신들이 우거왕에게 항복할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우거왕은 그들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왕험성은 항복하지 않고 대신 성기가 군사들을 독려하며 항전을 이어갔고, 그렇게 성은 함락되지 않고 지킬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는 가운데, 우거의 아들과 재상의 아들이 한나라에 포섭되어 성기가 암살됨으로써, 결국 기원전 108년에 왕험성은 함락되고 위만조선이 멸망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하지만 한나라의 조선원정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한나라군은 승리하긴 했지만 위만조선의 매국노들이 우거와 성기를 암살하면서 자멸해 버린 탓이 컸고, 이 배신자들은 전쟁이 끝난후 한나라에 투항한 대가로 산동과 하남 일대에 땅을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정군을 이끌었던 순체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형당했으며, 양복은 원래 죽어야했지만 돈을 내고 겨우 목숨만 건져 평민으로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나라군은 철저한 실패를 맛보았으며 위만조선의 내분이 아니었으면 이후 설치되는 한사군 역시 우리역사에 등장하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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