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멸망에 큰 역할한 두명의 매국노들

2023. 9. 14. 11:0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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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 갑자기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던 의자왕은 비록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말년에 긴장이 풀어지고 왕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성충이나 흥수같은 대신들을 죽이거나 귀양보내는 실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빠른 판단으로 사비도성을 버리고 좀더 방어가 수월한 웅진성을 후퇴해 저항해려 했습니다.

 

당군과 신라군은 모두 백제 본토로 원정을 왔기 때문에 백제가 주요 거점을 바탕으로 수비에 성공한다면 물러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웅진으로 후퇴한 의자왕에게 변고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당시 당나라군을 이끌던 소정방은 갑자기 의자왕과 백제 유력 귀족들을 사로잡았고, 백제의 최후 거점이던 웅진성까지 접수하면서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산발적인 백제 부흥군들이 일어나 성을 일부 회복하는등 저항했지만 이미 의자왕이 사로잡혀 당나라로 끌려갔기 때문에 조직적인 저항은 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안 의자왕이 왜 사로잡히고 당으로 끌려갔는지 의문으로 남았는데, 이것이 바로 낙양에서 나온 한개의 묘지석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이 묘지석에 등장한 인물 덕분에 백제는 의자왕과 함께 멸망할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묘지석에서 다루고 있는 예식진이라는 인물은 귀족으로 태어나 대대로 좌평 벼슬을 지낸 고관대작이었다고 합니다.

당나라와 신라가 침공했을 당시 예식진은 웅진성을 지키고 있는 귀족이었는데, 마침 의자왕이 이곳으로 도망온 것입니다.

아마도 의자왕은 한숨을 돌리고 반격을 준비한것 같은데, 갑자기 예식진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과 태자, 귀족들을 사로잡고 당나라에 항복하여 백제 멸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앞서 발견된 묘지석에서는 예식진의 조상이 한나라 말에 조조 밑에서 일하던 예형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인물은 머리가 비상하고 능력이 출중했지만 남들을 비판하고 독설로 비아냥대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런 성격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살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이 인물은 별로 자랑할 것이 없는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아마도 묘지명에 적힌대로 한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죽은후 그의 후손이 백제까지 흘러들어가 벼슬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예식진이 당나라에 다시 항복하게 된 것도 이미 그가 중국쪽 핏줄이었음을 자각했을 가능성이 커보이며, 하필 이런 중요한 지역을 예식진에게 맡겼던 의자왕의 판단 역시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 바로 망한것이 아니라 백제 부흥군의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주류성을 근거지로 한 복신과 도침이 이끄는 부흥군과 흑치상지가 이끄는 임존성의 부흥군이 유명하여 한때 백제 부흥군은 200여 성을 회복하면서 신라군을 격퇴하고 사비도성을 되찾기 위한 공격을 하는 등 기세를 크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주류성에서 이어진 권력쟁탈로 인해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새로 즉위한 풍왕이 복신을 죽이는 가운데 결국 주류성은 함락되고 풍왕은 고구려로 망명해버렸습니다.

 

하지만 흑치상지가 이끄는 부흥군은 남아있었는데, 갑자기 흑치상지가 당나라군을 이끌던 유인궤에게 항복해버린 것입니다. 임존성은 원래 험한 곳에 위치한 성이라 유인궤가 이곳을 공격하다가 너무 험준한 성벽에 가로막혀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공격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요지인데도, 갑자기 당나라에 항복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것입니다.

특히 흑치상지는 성과 함께 항복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내려와 항복한 것을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유인궤가 그에게 당나라의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라며 임존성 공격을 명령하자, 자신이 지키던 성을 공격하여 결국 자신의 손으로 임존성을 함락시켜 함께 싸우던 백제 부흥군을 당나라에 팔아넘기는 매국노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이후 예식진과 흑치상지는 조국을 팔아넘긴 대가로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큰 상을 받았습니다.

의자왕을 배신한 예식진은 당나라로부터 대장군의 직위를 받아 호의호식했으며, 흑치상지 역시 장군의 직위를 받아 당시 강성했던 토번과 싸워 이기고 북방 이민족들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나마 예식진은 백제가 멸망한뒤 얼마 지나지 않은 672년 사망했지만, 이후까지 살아남은 흑치상지는 당나라 귀족들의 견제를 받아 세운 전공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중 모반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689년 비참하게 자살했으니 어느정도 나라를 팔아넘긴 벌을 받았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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