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건륭제에 대한 엇갈린 평가

2023. 9. 28. 12:40역사

반응형

청나라가 대륙에 진입한후, 강희제는 삼번의 난과 러시아와의 전쟁 등에서 믿을수 없는 업적을 세우며 청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마도 강희제가 아니었으면 청나라는 북방의 러시아와 남쪽의 오삼계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소국으로 쪼그라들었을텐데, 그의 훌륭한 통치로 인해 청나라는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는 12년간의 근면한 통치로 더욱 부강하고 강력해진 국가를 건륭제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반응형

 

그렇게 통치를 시작한 건륭제는 이전부터 총명한 머리와 유능함으로 국가를 통치했는데, 그로인해 청나라는 소위 강건성세라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3대 120여년간의 시간은 정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그로인해 건륭제 역시 그동안 명군으로 칭송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륭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그의 재위 기간내내 이어진 군사원정과 함께 남쪽으로 배를 타고 강남지방을 순행하면서 돈을 물쓰듯 써댄 점, 그리고 사치를 좋아해 청나라 조정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만든 점들을 새롭게 지적받고 있습니다.

 

먼저 건륭제는 재위기간 동안 북방의 이민족들을 제압하기 위한 전쟁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청나라에 복속되기를 거부한 준가르족에 대한 전쟁을 거듭 일으켜 결국 이들을 복속하고 영토를 크게 넓히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돈과 재물을 소비하며 국가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거기에 버마지역에 쏟아부은 원정군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베트남 원정군 역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곳곳에서 패하여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등용한 복강안 같은 유능한 장군도 있었지만, 원래 복강안은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났지만 부패한 인물이라 원정군의 물자를 착복하는데 혈안이었고 그만큼 청나라의 재정을 좀먹은 장군이기도 합니다.

건륭제는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과대포장하여 십전무공의 전과를 자랑했는데, 이것은 악종기나 복강안 같은 뛰어난 장군들이 이룩한 것이고 건륭제는 그저 후방에서 이것을 지원했을 뿐인데도 그저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 강희제는 생전에 자신이 통치하는 국가를 돌아보았는데,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돈을 막고자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으로 예산을 낭비하지 않았고 주변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를 존경했던 건륭제 역시 수도를 떠나 남쪽으로 순행을 떠났는데, 강희제와는 달리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고 하루종일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노는데 급급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가진 돈이 떨어지면 주변 주민들에게 세금을 물려 원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강남지방은 청나라가 진입하면서 주민들을 수없이 학살하고 도시를 파괴한 전적이 있어 반청기질이 심한 곳이었는데도 그런것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유흥을 즐겼다고 하니, 그의 무모함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또한 이전에 멸망한 명나라가 사치로 인해 농민반란으로 멸망한 것을 거울삼아 청나라는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았는데, 건륭제는 이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국고로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수집했으며, 예술을 장려하겠다고 엄청난 돈을 써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할아버지 강희제가 만든 원명원은 작은 정원정도의 검소한 건물이었는데, 이곳을 건륭제가 화려하게 꾸미고 치장하여 완전히 개인별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곳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었을때 약탈당해 모든 보물은 빼앗기고 불에 타 지금은 황폐한 터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무조건 문화예술을 장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청나라에 비판적인 서적을 걸러내고 사상을 탄압하기 위해 사고전서라는 방대한 규모의 백과사전을 편찬하여 이것에 거슬리는 지식인들을 탄압하는데 이용했습니다.

 

그렇지만 건륭제의 가장 큰 실수는 부정부패를 만연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건륭제의 측근들은 모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공개적으로 재산을 축적했고, 그 돈으로 건륭제가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사서 바치거나 사치품을 구입해 상납하는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특히 그가 만년에 총애한 화신은 뛰어난 머리와 능력으로 건륭제의 비위를 맞추는 천부적인 능력이 있었고, 그로인해 건륭제의 신임을 얻은후 국가로 들어오는 조세수입을 빼돌려 자신의 재산으로 착복했습니다. 이런 비리에 대해 화신을 고발하는 상소도 많았지만, 건륭제는 끝까지 화신을 비호하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화신은 건륭제가 죽은후 그의 아들인 가경제에 의해 처형되고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그의 집에서 나온 재산만 청나라 조세수입의 몇년치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건륭제 치세부터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사치향략이 심해지면서 강력했던 청나라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가경제 시기부터는 백련교도를 비롯한 농민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나며 이후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열강들의 침입에도 대응하지 못하는 무력한 국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