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 11:10ㆍ역사
벨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사이에 끼어 오랫동안 수탈당한 지역입니다.
일찍부터 벨기에의 중심인 플랑드르 지역은 부유한 곳으로 이름났지만, 독립전쟁으로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고 전성기를 맞은 네덜란드와는 달리 에스파냐의 지배를 인정하고 한동안 식민통치를 받은 지역이었던 만큼 독립 역시 1831년에 겨우 열강들에 의해 인정받았을만큼 굉장히 늦은 출발을 보였습니다.
벨기에가 독립하여 새로운 출발을 맞았을 무렵, 세계에는 제국주의 열풍이 불어 곳곳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하는 미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메리카나 아시아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나눠먹고 있었고, 벨기에같은 신생국가가 진입할곳은 아프리카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에 창궐하던 풍토병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이전에는 미처 들어가지 못한 지역까지 전부 식민지로 만들게 되었는데 이런 빈틈을 벨기에가 포착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벨기에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닌, 당시 벨기에를 통치하던 레오폴드 2세가 저지른 일입니다. 당시 아프리카는 조각조각 나뉘어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아직 콩고지역은 넓은 미개척지가 있었지만 이전에 영유권을 주장하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약해지면서 이곳을 벨기에가 노린 것입니다.
레오폴드 2세는 교묘하게도 콩고지역 흑인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겠다며 콩고 독립국을 수립했는데, 이 과정에서 열강들의 승인과 지지를 받으며 결국 1884년 콩고지역의 지배권까지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콩고지역을 개인 식민지로 만든 레오폴드 2세는 본격적인 수탈에 들어갑니다.
우선 각 지역을 다스리던 족장들을 속여 모든 재산과 권리를 빼앗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곳곳을 개발하여 철도를 놓고 항구를 건설하며 착실하게 수탈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치 조선에 철도를 놓고 인프라를 건설한 일본처럼, 그저 사람들을 착취하여 돈을 벌 생각만 했던 당시 벨기에와 일본이 비슷한 일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 당시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던 고무를 채취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고무나무를 전부 몰수하고, 사람들을 동원해 가혹하게 고무를 채취하게 했습니다. 우선 마을을 급습해 여성들을 전부 가둔뒤 가족들을 협박해 고무를 채취해 바치게 하는 방법으로 정말 가혹하게 수탈한 것입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한 것은 아니고, 1인당 할당량을 채우게 하고 만약 이것을 채우지 못하면 한쪽손을 잘랐습니다.
거기에 다시 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랐으며 다시 또 할당량을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목을 잘랐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한 결과, 당시 원주민들중에 손을 잃고 영구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하니 당시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배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가늠도 안될 지경입니다.
또한 벨기에는 유럽지역에서도 초콜릿으로 이름높은 지역인데, 당시 레오폴드 2세가 초콜릿을 좋아해 콩고에서 재배되는 카카오마저 이곳에서 수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벨기에의 초콜릿 역사가 시작되었고, 당시 이런 수탈이 아니었다면 지금 초콜릿으로 유명한 벨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신나간 수탈과 살인으로 당시 콩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콩고에서는 정확한 인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거기에 얼마나 살해당했는지조차 정확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과연 벨기에인들이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했는지도 모른다는것에 더욱 경악하게 만듭니다.
이런 잔혹한 통치가 이어지자, 결국 레오폴드 2세가 저지른 만행들이 폭로되기 시작합니다.
콩고에 있던 선교사들에 의해 사진이 촬영되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유명한 작가인 마크 트웨인과 조지프 콘래드같은 지식인들도 이런 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1906년 벨기에 정부는 직접 콩고를 벨기에로 정식 합병하고 레오폴드 2세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개선을 약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무와 카카오 수탈은 멈추지 않았고, 단지 손을 자르거나 목숨을 빼앗는 일을 멈추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만행에도 불구하고 레오폴드 2세의 벨기에 내에서 인식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식민지에서 착취한 돈으로 벨기에 곳곳에 화려한 건물과 도로를 만들었고, 그로인해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거기에 레오폴드 2세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역사의 평가를 받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벨기에에서는 이런 만행을 저지른 레오폴드 2세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있고, 위대한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의 과오를 잊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벨기에는 정말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듯 보일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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