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도 찾지 못한 고구려의 도읍 평양

2023. 9. 6. 11:5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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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이 평안도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상식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로 일컬어지는 세종조차 고구려의 도읍 평양이 평안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없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과연 지금의 평안도 평양이 왜 고구려 마지막 수도였다고 하는지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는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9년 3월 13일에 세종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예조판서 신상이 말하기를, 삼국의 시조묘를 각기 도읍한 곳에 세우려고 하는데 신라는 경주이고 백제는 전주이겠지만 고구려의 도읍이 확실치 않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신라의 도읍은 경주가 맞지만, 백제의 도읍이 왜 공주나 부여가 아닌 전주라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거기에 고구려의 도읍지로 알고있는 평안도 평양이 당시 조선의 영토안에 있었는데, 왜 고구려의 도읍을 알지 못한다는 것인지도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말들이 오고가자 결국 세종은 도읍을 알기 어렵다면 그 나라의 영토안에 시조묘를 세우게 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살펴보면 조선초기에도 평안도 평양이 고구려의 도읍이었다는 생각은 상식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생각은 언제 생겨난 것이며, 누가 어떻게 조작해냈는지 궁금해집니다.

조선 초기에도 평안도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당연하게도 고려시대에도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심어준 가장 큰 요인은, 대일항쟁기 동안 조선사를 편찬한 일본인 관변학자들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쓰다 소키치와 이마니시 류 등의 학자들은 우리역사를 반도안에 구겨넣고 대륙에 있던 신라와 고려, 조선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고구려의 평양과 그곳에 설치한 고려의 서경이 지금의 평양라는 사실에 어떤 고증도 필요하지 않는다는 야나이 와타리라는 학자의 주장을 보면 아마도 이때 생겨난 생각이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정작 고구려의 평양이자 고려의 서경을 빼앗아갔던 원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원사지리지나 명나라의 강역을 기록한 대명일통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조선과 공존하던 명나라 사람들조차 고구려의 평양과 고려의 서경이 전부 지금의 요령성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를 아직도 반도내로 국한시키고, 고구려의 평양은 무조건 평안도 평양이라는 주장만을 답습하고 있는 소위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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