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오늘 일어났던 끔찍한 관동대학살

2023. 9. 1. 13:18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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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일어난 지진은 리히터규모 7.9에서 8.3 사이로 추정되며 7분 가량 일어났고, 여진이 이후까지 리히터규모 6 이상으로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발생한 지진으로 10만명에서 14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고, 3만여명이 실종되고 20만여 채의 가옥들이 피해를 입는 커다란 재앙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대지진의 영향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이 소실되고 치안도 마비되어 혼란스러운 시기에 갑자기 난데없는 유언비어가 떠돌게 됩니다.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약탈을 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믿도끝도없는 내용의 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커져 결국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독이 든 만두를 나누어주어 일본인을 죽이려 한다는 등의 소문으로 발전하였고 당시 실의에 빠지고 무력감에 젖어있던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결성하여 조선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민재판식으로 조선인들을 잡아다가 처형했으며, 단지 조선의 의복을 입었다는 이유와 일본어 발음이 이상한 사람들까지 전부 조선인 폭도로 매도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무고한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황국신민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던 부락민들까지 조선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 살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일을 말려야 할 일본 경찰과 일본군, 소방관같은 공무원들도 오히려 묵인하고 동조하는 바람에 더욱 많은 조선인 희생자들이 발생했으며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재산과 부동산은 전부 일본정부가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당시 일본사회에서 외톨이 취급을 받던 사회주의자들과 재일중국인들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조선인들과 같이 죽어갔다고 하니, 결코 그때의 일본인들은 지진으로 인한 분노와 두려움을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에게 집단학살이라는 형태로 표출한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결국 일본경찰과 일본군은 학살이 계속해서 과열되고 피해가 커지자 단속에 나섰고, 그제서야 이런 대학살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난 후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보고서를 통해 사망자가 6661명이라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일본정부는 학살이 일어났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사망한 조선인이 300명 미만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인 학자들이 내놓은 결과로는 사망한 조선인이 2500여명이라고 하지만 당시 집계되지 않았던 죽음들이 많았고, 은폐된 사망자들까지 전부 찾는다면 6천명을 넘어 그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추론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추모식이 1924년부터 시작되었고, 잠깐 중단되었다가 일본내 재일본조선인동맹과 기독교세력이 함께하여 당시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을 열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건의 주무대였던 도쿄역시 부채의식이 있었는지 1970년대 이후로 도쿄도지사의 명의로 된 추도문을 매년 보냈지만, 그마저도 2017년 이후로 끊겼다고 합니다.

정작 피해를 입은 한국에서는 이렇게 학살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념하고 기리는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14년 특별법을 발의했다가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되었으니 조선의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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