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암군중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무능했던 명종

2023. 6. 8. 13:51역사

반응형
반응형

조선의 10대 군주 연산군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온갖 방탕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연산군의 그런 무절제한 생활과 정책 덕분에 쿠데타가 일어나 쫓겨나고, 그의 동생인 진성대군이 즉위하면서 11대 군주인 중종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역사의 또다른 비극이 되고 맙니다.

 

중종은 보위에 오른 이후에도 반정공신들의 입김 덕분에 온전한 권리를 행사할수 없었고, 나중에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키웠던 사림세력을 자신의 손으로 내치는 기묘사화를 통해 정치감각이 꽝이었음을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했는데, 그래도 인종은 머리도 좋고 인자한 성격 덕분에 성군이 될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즉위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인종의 아들이 없었던 덕분에 명종이 그 뒤를 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조선의 군주가 되었지만, 명종은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사를 처리했기 때문에 한동안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외숙인 윤원형을 비롯한 인척세력이 득세하면서 연산군 이후 정체되기 시작한 조선의 쇠퇴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https://youtu.be/YMrWEVqclX8

우리에게 의적으로 유명한 임꺽정이 활동한 시기가 바로 명종의 재위기간입니다.

황해도의 갈대밭을 권신들이 차지하고 무거운 세금을 매기자 이것에 항의하던 임꺽정이 결국 도둑이 되어 활동했고, 곳곳에 그를 숨겨주는 민초들의 지지에 힘입어 임꺽정은 한양까지 출몰하는 활동영역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배신자였던 서림의 밀고로 임꺽정은 사로잡혀 처형당하면서 임꺽정은 죽고 말았지만,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세력의 부정부패는 전혀 해결하지 않은채 그저 임꺽정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명종이 스무살이 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물러났는데, 그렇게 직접 정사를 처리하게 된 명종이었지만 역시 무능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명종이 친정을 시작하고 경복궁에 불이나 크게 타버렸는데, 다른 시급한 사안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을 서둘러 1년만에 복구하게 됩니다. 다만 그가 재건한 경복궁은 50년도 되지않아 백성들의 손에 몽땅 타버리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경복궁 재건에 매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성종이후 약해진 조선의 국방력을 재건하지 못했고, 결국 명종 10년에 왜구들이 전라도에 침입하여 각지를 함락하고 약탈과 살인을 자행한 을묘왜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칩입해온 왜구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각지의 조선군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패전을 거듭하던 가운데 이준경과 이윤경 형제의 활약에 힘입어 간신히 왜군을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선의 국방력이 형편없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결국 명종은 군사력을 키우지 못했고, 이것이 이후 임진왜란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거기에 아직 문정왕후가 살아있을때는 외척인 윤원형을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명종이 너무 부패한 윤원형을 제거하려고 하자, 문정왕후가 명종을 불러 경고의 말을 전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결국 문정왕후가 죽고 난 이후 윤원형을 제거하는데 성공하기는 하지만 이미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후였습니다.

특히 하나밖에 없던 순회세자가 죽고나서 건강이 나빠졌고, 마침 기존의 훈구대신들을 대신해 자리를 치고 올라온 사림들과 기존 대신들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더욱 온전한 자신만의 능력을 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건강이 나빠지던 1565년, 명종은 병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평소 선조로 즉위하는 하성군을 총애했다는 일화가 있기는 했지만 명종이 명확하게 후계자로 지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국 인순왕후가 자신의 눈앞에서 하성군을 후계자로 지목하는것을 무력하게 지켜만 봤다고 합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인 34살에 죽어버린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가 즉위했고,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정작 욕을 먹어야 할 명종대신 선조가 무능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만 것입니다.

 

명종은 원래대로라면 왕이 될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였던 형이 일찍 죽어버린 바람에 등이 떠밀리듯 왕이 되었고, 막상 왕이 되어도 어머니와 외가 덕분에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할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다시 찾아온 후에도 이전에 있었던 폐단을 시정하지도 못했고, 그런 시정의지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무능한 군주라고 욕을 먹어도 할말은 없다고 봅니다.

조선왕조 역사상 무능한 군주는 여럿 있었지만, 명종은 무능에 있어서 1,2위를 다투어야 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없어서인지 역설적으로 욕을 덜 먹는 신기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20년이 넘는 재위기간동안 특별히 남긴 업적도 없고, 위기를 넘기기 위한 별다른 노력도 없었으니 조선왕조 무능의 아이콘이라고 불러도 충분하겠습니다. 이런점에 있어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재위했던 명나라의 가정제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아보이기도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