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해야 할 조작된 역사들

2023. 5. 21. 12:09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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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하는데 , 당시 차를 타고 무주쪽을 지나가면서 나제통문이라는 곳을 지나쳐갔습니다.

이곳은 제가 교과서를 보았을때,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이곳을 통해 김유신이 백제를 평정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교과서 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책들을 보아도 그런 내용들이 실려있었고, 그것 때문에 저도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제 짧은 지식을 뽐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나제통문의 유래나 역사는 잘 모르는듯 했고, 그래서 저도 우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제통문의 역사는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교과서에서조차 이런 내용이 빠졌고, 당시 이곳에서 살던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더이상의 역사왜곡은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나제통문의 신화는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알고보니, 나제통문은 조작된 내용이고 허황된 거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 굴은 1925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금광개발을 위해 뚫은 것이라고 합니다. 터널이 뚫리면서 새로 길도 생겼고, 그로인해 왕래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인 1963년 이 지역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명승지들을 조명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터널이 나제통문이라는 거짓된 역사를 뒤집어쓴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그저 관광객들을 좀더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왜곡이었는데, 그것이 커지고 커져서 결국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고 그만큼 거짓된 정보가 실제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 나제통문 사건이 더욱 놀라운 점은, 더욱 오래된 시점도 아닌 60년대에 대놓고 역사조작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백제와 신라가 무주일대에서 대치했던 것이 빼도박도 못할 확실한 사실도 아니고, 김유신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점도 근거없는 날조인데도 이런 주장에 힘을 얻어 한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역사조작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역사의 왜곡과 조작의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https://youtu.be/z2YurODBOwI

백제의 마지막 군주라는 이유로 나라를 망친 무능한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은 의자왕은 알고보면 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영명한 군주였습니다.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의자왕은 절묘한 외교로 신라를 고립시켰으며, 신라의 33개성을 빼앗고 서라벌로 향하는 중요한 요새인 대야성까지 함락시켜 신라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간 정복군주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겁하게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이적행위 덕분에 백제가 공격받았고, 좀더 방어가 쉬운 웅진성으로 옮겨가 항전을 계속하려다가 예식진이라는 웅진성의 성주가 배신하는 바람에 사로잡히고 백제가 멸망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예식진의 묘지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그 어떤 역사서보다 진실된 내용이라고 봅니다. 분명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항전을 이어가며, 당과 신라의 연합군을 잘 막아냈다면 오히려 백제가 멸망하지 않고 더 오랫동안 이어졌을테니 진실로 드러난 사실이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런 의자왕의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망국의 군주로만 기억하는 역사 덕분에 오늘도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낙화암에서는 여전히 의자왕의 사치와 오만을 비판하는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http://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68023 

 

식민사학, 남인실학자들의 고대사 인식 위에 서다 - K스피릿

존왕(尊王)을 명분으로 감행한 군사정변을 통해 성립된 메이지정권 최상위 권력집단은 군권을 장악한 메이지군벌이었다. 군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www.ikoreanspirit.com

특히 우리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된 것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에 의해서입니다.

남인계열 학자였던 한백겸의 그릇된 역사관에서 출발한 역사의식은 남인쪽 실학자들에게도 이어져,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에서도 발해의 영역을 잘못 비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실학자중에서도 최고 천재로 칭송받는 정약용마저 아방강역고에서 우리역사를 반도에만 국한된 역사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안정복과 정약용은 단군에 대해서도 문헌적인 근거가 없다면서 폄훼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아무 근거도 없이 지금의 평양지방에 낙랑군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런 주장 덕분에 당시에 비슷한 실학자의 길을 걷던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근거없이 고대사를 왜곡하고, 이상한 주장을 하는 바람에 조선의 영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박지원은 남인계열 학자들과는 달리 대륙에 평양이 있었고, 우리역사를 다시 평가하는 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더욱 널리 퍼지지 않은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말도안되는 주장 덕분에 오히려 이것이 일제의 조선사 조작에 힘을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남인계열 실학자들의 그릇된 역사관을 이어받아 오히려 일제가 조선사 편수회를 통해 우리 역사에 장난질 칠수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일제가 비틀어놓고 간 역사는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극복하기는 커녕 만고의 진리처럼 떠받들여지고 있으니, 언제쯤 우리는 정확한 우리역사를 되찾을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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