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거란의 1차 전쟁과 고구려 계승의식

2023. 5. 7. 12:0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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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궁예에게서 나라를 빼앗은 왕건은 고구려 계승의식을 다시 드높이면서 태봉을 대신한 새로운 국가인 고려를 건국합니다. 황제를 칭하면서 천수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왕건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고, 이미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국가였던 북쪽의 발해와 공존하게 됩니다.

 

왕건이 견훤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대패하여 비참하게 모든 군대와 장군들을 잃고 혼자 달아날 무렵, 발해는 이미 20여년간 치열하게 싸워온 거란과 전쟁중이었습니다. 요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거란을 강국으로 끌어올린 야율아보기가 치열하게 발해와 20년을 싸워 요동땅을 얻었다고 하지만, 불과 발해 멸망 이전에도 발해는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거란을 습격하여 큰 타격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만큼 밀고밀리는 혈전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발해의 부여부를 빼앗고 수도인 상경을 포위한 거란군에게 결국 발해가 926년 항복하면서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진 국가는 거란과 고려만 남게됩니다. 비록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발해유민들의 부흥운동에 못이겨 거란이 물러나면서 발해땅은 공백으로 남게되고, 그 사이 백제를 멸망시킨 고려의 국새가 커지면서 거란과 한판대결을 예고하게 됩니다. 이미 고려초에 왕건에게 거란은 사신과 낙타를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지만,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진 왕건은 사신을 죽이고 낙타는 다리밑에 묶은채 굶겨죽이는 만부교 사건으로 두 국가 사이는 험악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고려가 어느정도 체제를 정비한 성종시절, 거란은 전격적으로 고려를 침공합니다.

993년 거란의 동경유수였던 소손녕은 자칭 80만의 군사를 자랑하면서 고려로 내려와 봉산에서 고려군을 격파하고 기세를 올렸습니다. 이미 고려조정은 화친하자는 의견이 많았고, 자비령 이북의 땅을 포기하고 항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도 했습니다.

다만 거란을 피해 고려로 망명한 발해유민 출신 대도수가 이끄는 고려군이 안융진에서 거란군을 격파하자, 서희를 필두로 한 주전파가 힘을 얻기는 했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보이자 결국 강화를 위한 만남을 시작합니다.

거란군 역시 80만이라는 소문을 내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군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곳곳에서 고려군에게 패하고 전황이 좋지 않자 초조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적진으로 찾아간 서희에게 소손녕은 협박으로 일관합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가 바로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려가 영토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물러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희는 고려가 바로 고구려의 뒤를 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직접적인 후계자이고, 고려의 서경이 고구려의 평양이라는 점을 들어 오히려 거란의 영토를 고려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https://namu.wiki/w/%EC%97%AC%EC%9A%94%EC%A0%84%EC%9F%81

 

여요전쟁 - 나무위키

자북령 이북 할지론에 의거한 고려 영토. 그러나 이러한 요군의 침입에 고려는 매우 동요했으며, 신료들은 "항복하자"(항복론)와 "항복만 하면 받아주겠냐, 땅도 같이 떼줘야지."(자비령 이북 할

namu.wiki

이 내용은 고려사절요에 잘 기록되어 있으며, 결국 이 회담의 결과로 인해 거란군은 고려에서 철수하게 되며 서희가 이끄는 고려군은 북진하여 강동8주를 개척하여 영토를 늘리게 되니 결과적으로 고려의 국력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회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거란이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했고,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영토를 자신들이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거란이 우리민족과 관련이 없다고 보고 있으며, 이후 거란을 멸망시키는 여진족 또한 우리민족과는 다른 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거란은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거란 역시 우리민족에서 떨어져나간 한 갈래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혈연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돌궐같은 서쪽에서 넘어온 민족이 이런 주장을 할리가 없으니, 거란의 인식이 이렇다면 분명 고구려와 관련된 민족이었음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서희가 고구려를 계승한것은 고려라는 주장을 하면서 평양에 도읍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려는 신라땅에서 일어났으며, 당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에도 미치지 못한 초라한 판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소손녕이 고려의 주장을 수용하고 이후 여진을 토벌하는데도 방관했으니 서희의 주장에 허점이 없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알고있는 고려는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초라한 국가가 아니고, 고구려의 영토를 계승하여 건국한 국가라는 주장이 먹힐만큼 고구려의 평양과 옛 땅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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