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녕부에 대한 의문과 고려의 고토수복 전쟁

2023. 4. 20. 13:1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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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 우리 역사에 또다시 매국노들이 등장합니다.

1269년 최탄, 이연령, 현원령 등이 고려정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서북면 병마사 등 고려 관리를 죽이고 그 북계의 60여 성을 몽골에 바치고 투항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몽골의 직할령이 되어버린 고려의 서북면은 동녕부라는 이름으로 몽골의 직접통치를 받았으며, 고려의 영토가 줄어들게 된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동녕부는 당시 고려를 통치하던 원종이 직접 세조 쿠빌라이를 만나 반환요청을 했지만 오히려 원나라에서는 동녕총관부로 승격시키면서 고려에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종의 뒤를 이은 충렬왕 시절 고려의 거듭된 간청에 결국 동녕부를 폐지하고 반환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녕부가 폐지되었고, 비슷한 시기 몽골에 넘어간 쌍성총관부를 이후 무력으로 되찾았다는 식으로 역사시간에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몽골이 직접 설치한 동녕부는 폐지된것이 아닙니다. 

원사에 기록된 동녕부에 대한 기록은 원 세조 지정 6년에 고려에서 최탄 등이 땅을 가지고 항복했다고 적혀 있으며, 지정 8년에 서경을 고쳐 동녕부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고려사에 보이는 동녕부를 반환했다는 기록은 원사에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인지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서는 이제는 동녕부를 완전히 반환했다는 내용 대신 북쪽으로 동녕부를 옮겼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후 공민왕 3년에 고려의 고토회복을 위한 북벌을 시도하면서 동녕부가 다시 등장합니다.

1370년 1월에 이성계가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몽골을 공격하였으며, 울라산성에서 저항하던 이오로첩목아를 격파하고 고토를 수복했다는 것입니다.

1370년 10월 요심지역을 완전히 회복하고 강계부사로 하여금 요심지역은 이전부터 고려의 옛 땅이었다는 사실을 써붙이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성계가 주로 회복한 지역은 요심을 중심으로 한 요녕성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때의 기록을 살펴보면 동녕부를 평정하고 북방사람들이 귀순해 왔는데 “동쪽은 황성까지, 북쪽은 동녕부까지, 서쪽은 바다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의 지대에 적의 종적이 없어졌다. (東至皇城北地東寧府西至于海南至鴨綠爲至一空) 고려사 第42券 공민왕 19년

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때 완전히 원에서 설치한 동녕부를 점령했으며 고려가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새로 점령한 지역을 열거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동쪽은 황성까지, 서쪽은 바다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앞서 인용한 지도를 보면 고려가 새로 수복한 지역은 반도내의 영역이 아닌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황성이라는 지명이 어디를 뜻하는지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동녕부의 아래쪽에 있었던 지명으로 보이고, 압록강이북까지 전부 수복했다는 점은 확실하니 지금의 압록강이 그때의 압록이라고 가정해도 대륙까지 고려가 진출한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후 1586년 명나라에서 편찬된 흠정속문헌통고를 살펴보면, 동녕로는 원래 고려의 땅으로 고려 태조가 설치한 서경을 나중에 고려의 반역자들이 가지고 몽골에 투항했으며 그 서경이 지금의 요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명나라의 영토를 기록한 대명일통지는 요동도지휘사사 아래 있었던 요양을 기록하면서 이곳이 고구려가 도읍한 곳이고, 이후 고려가 서경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니 공민왕이 군대를 동원하여 요심지역을 되찾은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원나라와 명나라 시기에 편찬된 지리지와 역사서를 살펴보면 원나라가 설치했던 동녕부는 모두 요녕성에 있었고, 그 중심은 고구려가 도읍하고 고려가 서경으로 중시한 요양이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고려의 서경이 평안도 평양이라는 결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고려 공민왕이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요심지역을 탈환했지만 이후 이 지역이 명나라에 넘어가면서 그런 안타까움이 더욱 커졌으니, 언제쯤 고려의 정확한 영토를 우리가 알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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