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학살자, 불패의 명장 백기

2023. 3. 25. 13:19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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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진나라는 공손앙의 정책을 채택하여 변법을 시행했습니다.

그렇게 진나라 효공은 개혁에 착수했으며, 기계처럼 돌아가는 법으로 국가를 통치하여 결국 서방의 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진나라의 국력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동쪽의 위나라와 한나라에 막혔고 거기에 북방의 조나라 역시 무령왕 시절 북방민족의 전법을 도입하며 새로운 강자가 되면서 진나라의 진출은 좌절되는듯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진나라에서는 새로운 명장이 출현합니다.

전국책에서는 공손기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된 백기는 진나라 소왕 시절무렵 등용되어 경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그를 좋게 보아준 위염의 천거로 장군이 되었지만, 위염을 제거하고 재상이 된 범수가 득세하면서 그의 자리가 위험해지는 위기속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전공을 쌓아나갑니다.

 

우선 가장 진나라와 가까운 한나라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는데, 특히 위나라와 연합한 한나라군을 격파하고 24만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한나라는 방어역량을 거의 상실하고 진나라에 복종하게 되며, 이후에는 강국 위나라와 대결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군을 격파하고 61여개의 성을 얻었으며, 주요한 방어거점들을 모두 함락시켜 위나라 역시 진나라를 막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갑니다.

그 후에는 북방의 강국으로 떠오른 조나라와 싸워 성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여기에서는 그다지 큰 전공을 세운것은 아닌듯 합니다. 한나라와 위나라 연합군을 20만이 넘게 죽였던 백기지만, 아무래도 조나라에서는 고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백기의 가장 눈부신 전과는 남쪽의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올리게 됩니다.

초나라는 회왕이 진나라에 화친을 위해 갔다가 억류되고 돌아가지 못하는 과정에서 진나라와 갈등이 깊어졌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백기가 초나라 정벌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원래 초나라는 남방의 강국으로, 공자의 고향으로 유명한 노나라를 비롯한 소국들을 전부 먹어치우고 병력이 백만이 넘는 만만치 않은 국가였는데도 백기는 10만명이 채 안되는 원정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초나라군은 방어하는 이점을 살려 진나라군과 싸웠지만, 백기의 전략에 휘말려 곳곳에서 패배하였으며 결국 초나라의 도읍인 영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도성을 지키기위해 버티는 초나라군이었지만 결국 백기의 공격앞에 초나라의 도읍은 함락되고, 모든 금은보화는 진나라군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주변에 있던 초나라 역대 왕들의 무덤은 전부 파헤쳐지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남쪽에서 진나라와 맞설수 있다는 평가를 받던 초나라였지만, 이렇게 백기가 지휘하는 진나라군에 수도를 빼앗기고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경양왕은 수도마저 동쪽의 진성으로 옮겨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초나라를 정벌한 백기는 다시 한나라와 싸웠고, 연합군 13만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고전했던 조나라와 싸워 2만명을 물로 공격해 수장시켰으며 다시 한나라를 공격해 5만명을 죽였습니다.

한나라는 백기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이후에는 병력을 완전히 잃고 땅을 조나라에 넘기는등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게 됩니다.

 

그다음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했는데, 조나라의 유명한 장군인 염파의 작전에 휘말려 고전했습니다.

진나라의 패배가 거의 확실해질 무렵, 진나라의 범수는 그의 정적이었던 백기를 과감히 기용해 전격적으로 조나라의 전쟁에 투입합니다. 그리고 조나라에 간첩을 보내 염파를 해임시켰으며, 능력없는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만들어 상황반전을 노리게 됩니다.

결국 새로 조나라군을 이끌게 된 조괄은 군을 이끌고 섣불리 공격하다가 백기의 전략에 말려들어 포위되었으며, 46일동안 물도 마시지 못한채로 갇혀있다가 결국 나와서 싸우다가 패배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국시대 말기에 유명했던 장평지전인데, 떠오르던 강국인 조나라의 세력이 완전히 꺾이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사로잡힌 조나라군이 45만명이라고 전해지는데, 백기는 수많은 포로를 과감하게 학살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소년병 240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 조나라 포로들은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해버린 것입니다. 

어차피 피해가 큰 진나라군이 이렇게 많은 포로를 관리하기 어렵고, 다시 돌려보내면 바로 진나라에 대항하는 병력이 될것이니 선제적으로 학살해버린 것인데 이것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백기의 명성이 일거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번에 많은 인구가 줄어버린 조나라는 두번다시 진나라와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지만, 당시 조나라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이후 진나라가 조나라의 도읍인 한단을 포위했다가 강한 반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예병의 태반이 전사하는 대패를 맛보게 됩니다. 

백기 역시 그렇게 눈부신 전공을 세웠지만 포로를 학살한 덕분에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범수의 견제 속에 무안군이라는 칭호를 받은채 중앙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후 조나라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싫다면서 버티다가, 진나라 소왕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자살하게 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습니다. 죽으면서 자신이 학살한 조나라의 포로 45만에 대한 참회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이름은 무패에 빛나는 장군이 아니라 대학살을 자행한 전쟁 범죄자로 남아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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