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르인의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

2022. 5. 25. 14:1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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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년 공동황제였던 요안네스 치미스케스가 동방원정길에 병에 걸려 사망하자, 그때까지 공동황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실리우스 2세는 비로소 친정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전임 황제들이 쿠데타와 암살로 집권한 경험 탓인지 귀족들이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았고, 호시탐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하여 자신이 황제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르다스 스클리로스의 반란을 진압한 바실리우스 2세는, 약해진 황제의 권위와 함께 국경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불가리아를 제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군주 사무엘은 비범한 인물이었고 비잔티움 제국군을 트라야누스 관문에서 크게 물리치게 됩니다.

당시 스무살이었던 바실리우스 2세는 자신만만한 상태에서 막강한 제국군을 이끌고 원정을 감행했지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물러났으며 다시는 적을 얕잡아보고 덤비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전투의 패전으로 위기에 몰린 바실리우스 2세는 다시한번 대귀족인 바르다스 포카스의 반란을 맞이합니다.

이번에는 수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바르다스 포카스의 손으로 넘어갔고, 유능한 장군이었던 그를 막을수 있는 사람이 없어보였습니다.

이 때 여동생을 당시 키예프 공국으로 시집보내며 6천명의 지원군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반격을 시작하여 결국 바르다스 포카스를 죽이며 반란은 성공적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미 이전에 반기를 들었던 귀족 바르다스 스클리로스는 항복한 후 바실리우스에게 '귀족들을 견제하고 봉지를 삭감하여 세금으로 그들을 괴롭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한다' 라는 조언을 남겼고, 바실리우스는 평생동안 이 교훈을 잊지 않고 실천했다고 합니다.

 

이제 내전이 마무리되었으니 숙적 불가리아만 남은 상태에서, 바실리우스는 예전의 기억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군을 강하게 훈련시켰는데 파도처럼 모두가 통제에 따르는 상황에서 한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특히 중점에 두었다고 합니다. 천천히 나아가지만 한번 도착하면 모든것을 파괴하는 물처럼 황제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군대를 양성했고, 이 군대를 바탕으로 다시한번 불가리아와 싸우게 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전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거의 15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이고, 한동안 양군이 대치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오히려 이런 긴 전쟁의 기록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점입니다.

1014년 킴발롱구스 협곡에서 차르 사무엘이 이끄는 불가리아군의 주력을 크게 무찔렀으며 15000명 가량의 포로를 잡았습니다. 불가리아군이 동원한 4만 남짓한 군대중에 전사자를 제외하고 15000명의 포로를 잡았으니 이 전투결과 불가리아군은 완전히 전의를 잃고 붕괴된 상태였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바실리우스는 굉장히 잔인한 형벌을 포로들에게 내립니다. 포로를 100명 단위로 묶은 뒤, 인솔자는 눈을 하나만 뽑아 이들을 이끌게 하고 나머지는 전부 실명시켜 전투자체를 할수 없게 만든것입니다.

물론 바실리우스는 동방원정때에도 포로의 오른팔을 잘라버리고 장님을 만든 전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잔인한 형벌을 가한것은 당시로서도 가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 덕분에 바실리우스는 불가록토노스, 불가르인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장님이 된 포로들이 수도에 도착하자 차르 사무엘은 그의 주력군이 한순간에 장님이 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쓰려져 사망했으며 결국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티움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수도에 입성한 바실리우스 2세는 군대를 처리할때와는 다르게 매우 온건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죽은 사무엘의 왕비에게는 비잔티움의 직위를 내렸으며 기존 귀족들과 성직자들도 크게 건드리지 않고 그들의 지위와 특권을 인정하여 빠르게 불가리아를 안정시킨 것입니다.

향후 불가리아가 다시 독립하기에는 100년 가량이 걸렸으며 그때까지는 로마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불가리아의 멸망 이후 바실리우스 2세는 어지러웠던 발칸반도를 다시한번 제국의 수중에 넣었습니다.

당시 큰 세력이었던 세르비아를 제압하여 비잔티움의 가신으로 편입시켰고, 남부 이탈리아까지 다시 공격해 예전 제국령을 회복하여 다시한번 비잔티움 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실리우스 2세는 항상 고독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못생기고, 괴팍하며, 음침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주변에 절친한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편집적인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성격으로 제국을 안정적으로 경영하는데 노력했고, 49년동안 재위하면서 평생 귀족들을 억누르고 일반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그 점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황제였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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