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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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에서 장군으로, 말년에는 역적이 된 한명련
임진왜란은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비극이었지만, 당시 전쟁을 통해 천민에서 벗어나 신분상승을 꾀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왜병의 머리를 일정이상 베어오면 공적을 인정받아 천민에서 면천되어 양인으로 올라설수 있었으니, 임진왜란 초반에 조선이 밀리던 시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신분상승의 꿈을 쫓아 왜병의 머리를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명련은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황해도에서 천민 출신으로 태어나 병졸로 전쟁에 참여한 한명련은 그 용감함을 인정받아 조정에서 포상할 정도였으며, 이후 벌어진 여러 전투에서 최전선에 앞장서서 싸웠습니다.예를 들자면 왜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열심히 싸워 포위를 풀고 오히려 적병을 죽이거나 지휘관을 생포해 기밀을 알아낼 정도로 전투 하나만큼은 인정받은 ..
2025.03.23 -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과 이어진 비극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10월, 조선 조정에는 반가운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진주성을 수비하고 있던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이 왜군 3만의 치열한 포위를 이겨내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이 수성전의 주인공인 김시민 장군은 고려시대의 명장인 김방경의 후손이고, 이후 그의 후손인 백범 김구는 나라를 빼앗은 일제에 대항해 싸웠으니 이 집안은 정말 명문가라고 불러도 부족할듯한 느낌입니다. 1592년 여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부산포와 동래성은 곧바로 무너졌고, 곳곳에서 조선군은 왜군에 패하며 달아났습니다. 당시 진주목사이던 이경 역시 김시민을 비롯한 장수들과 함께 진주성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도망쳤지만, 경상도 초유사였던 김성일이 다시 이들을 불러와 진주의 수비를 맡겼습니다.그런던 와중..
2024.12.15 -
하나같이 개차반이었던 선조의 아들들
조선의 14대 군주인 선조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조라는 묘호가 아까운 인물입니다. 물론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는 탁월한 감각과 결단으로 각지에 인재들을 배치하고, 서인과 동인의 싸움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왕실과 자신의 권위를 높였으며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등 나름 명군의 자질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을 통해 그의 단점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맙니다. 도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기는 커녕 정신못차리고 북쪽으로 도망치기 바빴고, 거기에 온갖 의심병이 돌아 의병장들을 죽이고 권한을 축소했으며 이순신을 비롯한 명장들을 파직하거나 자신의 말만 잘 따르는 원균같은 소인배들을 기용하여 힘들게 육성한 수군을 날려먹는등 전쟁기간에는 완전히 밑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그래도 분조를 운영..
2024.04.03 -
임진왜란에 발생한 조선인 포로와 송환문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조선인들은 두가지의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도망간 조선 조정을 따라 피난하면서 조선인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집과 고향을 점령한 왜군에게 항복하고 살 것인가의 선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많은 조선인들이 왜군에 항복하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특히 이후 발생한 정유재란부터는 조선인을 죽이고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고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더욱 일본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게 됩니다. 대부분 일본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줄어든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조선인들을 조직적으로 납치한 일본이지만, 막상 포로들은 기구한 삶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조선인 포로들은 양민들만 납치된 것이 아니라, 양반을 비롯한 군인들과 학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강항같은 학자들은 일본에 성리학을 ..
2023.08.25 -
황석산성 전투
황석산성전투 (naver.com) 황석산성전투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음력 8월) 경상남도 함양에서 벌어진 전투. 1597년(선조 30) 9월 24일(음력 8월 14일)부터 9월 28일(음력 8월 18일)까지 안음현(安陰縣,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의 황석산성(黃石 terms.naver.com 황석산성 백성의 전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황석산성 백성의 전투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www.hani.co.kr 치열했던 임진년의 전투 이후, 1597년 정유년에 왜군이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 임진년에는 웅치와 이치전투에서 패해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했지만 이듬해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성을 허물어버려 진주에서 전라도로 가는 길이 뚫리고 맙니다. 하지만 명과 왜의..
202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