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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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를 위해 장렬히 전사한 곽하마
금나라와 몽골의 전쟁이 시작된후, 일방적으로 밀리던 금나라는 역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몽골과 대치했습니다.칭기즈칸이 어느정도 금나라 정벌에 성과를 낸후 서쪽으로 이동해 호라즘 왕국과 전쟁을 시작했을때 금나라는 빠르게 이것을 알아채고 그동안 잃어버린 곳들을 수복했으며, 결국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밀고밀리는 대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닥닥 긁어모은 금나라의 주력군이 삼봉산 전투에서 전멸하고, 완전히 수세에 몰리게 되자 금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을 버리고 애종은 채주로 도망가야했으며 결국 개봉을 지키던 장수는 몽골에 항복해 금나라의 모든 종실들과 비빈들이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그렇게 채주로 쫓겨간 애종은 결국 겹겹이 포위되어 송과 몽골 연합군에 의해 채주성이 함락되었고, 애종이 자살하고 완..
2024.05.16 -
남송의 유일한 명군 효종
금나라에게 나라의 절반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달아난 송나라는 지속적인 금나라의 침입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장강 이남에 위치한 건강은 남북조시대의 남조가 도읍으로 두었던 곳이라 험준한 지형과 방어가 엄중한 곳이었지만, 금나라의 왕자 김올출이 이끈 금군은 회수이북의 모든 땅을 빼앗고 장강을 넘어 건강까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모든 황족들이 금나라에 잡혀가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던 고종은 혼비백산하며 남쪽으로 도망갔고, 그러는 와중에 너무 놀랐던 모양인지 이런 도주과정에서 성기능을 상실하여 고자가 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도망친 송나라의 조정은 모든 권위를 잃어버리고 패주하였으며, 그나마 당시 유명한 악비가 이끄는 군대와 한세충 같은 장군들이 분전하여 금나라군을 북쪽으로 다시 밀어낼수 있..
2023.11.17 -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개봉성을 지키지 못한 송나라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당나라는 중국의 서쪽인 장인에 도읍하면서, 많은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이고, 농토가 비옥해 많은 왕조들이 수도로 삼을만큼 인기있는 곳이었던 장안일대는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당나라 말기에 일어났던 황소의 난은 장안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고 이후 당나라가 망하면서 장안은 두번다시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했습니다. 300여년간 이어지던 당나라를 찬탈한 주온은 새롭게 부상하던 자신의 근거지인 변량으로 도읍을 정합니다. 이곳은 부유한 강남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세가 모이는 곳이고, 주변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운하와 강들을 따라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어 경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곳이기 때문에 망해버린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보다 훨씬 커질..
2023.06.01 -
금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세종
우리 역사중 세종이라는 시호를 받은 군주는 조선의 세종이 유일합니다. 조선의 세종은 재위기간 내내 괜찮은 정치를 폈으며, 문화와 과학기술 그리고 농업진흥 등의 다방면의 업적을 남겨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원래 세종이라는 묘호는 국가에 큰 업적을 남긴 군주들에게 부여되는 호칭입니다. 물론 명나라의 세종은 북로남왜라는 사건과 엄숭일당의 공포정치로 세종이라는 시호가 아까운 암군이었지만, 그 외의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들은 상당히 업적을 남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금나라의 세종은 전임 황제였던 희종과 해릉왕의 실정을 바로잡고, 금나라의 통치체제를 다시 정비했으며 어려웠던 금나라를 일으켜세운 군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금나라의 세종 완안오록은 1123년 여진족인 아버지와 발해인인..
2023.02.03 -
금나라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된 해릉왕
12세기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륙의 송나라를 침공하여 영토의 절반을 빼앗은 금나라는 순식간에 동아시아 최강국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기며 군신관계를 맺은 여진족이었지만, 이제 세력이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자 오히려 고려에 군신관계를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전성기를 누립니다.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남으로 밀어낸후 매년 25만냥의 은과 25만필의 비단을 받아내고 송나라 황제와 군신관계를 맺은 화의를 맺은 쾌거를 이룬 뒤 금나라의 황제였던 희종은 갈수록 정치에 뜻을 잃어버립니다. 점령한 하북과 하남, 산동과 섬서일대에서 금나라의 세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화를 실시하였던 통치 전반기와는 달리 집권 후반기에는 갈수록 술에 빠져 신하들과 공신들을 함부로 죽이는 공..
2022.12.15 -
우리역사와 인연이 깊은 여진과 금나라
우리 역사에서는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백제 건국초기와 신라 건국초기부터 말갈은 백제의 성을 함락시키고 약탈해갔으며, 신라에도 침입해 역시 신라의 성을 빼앗고 변경을 어지렵혔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후 말갈은 고구려에 편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양태왕이 수나라 문제의 침공 이전에 고구려군과 말갈의 기병을 이끌고 임유관을 비롯한 수나라의 변경을 초토화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에 침입한 당나라의 태종은 안시성 인근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이기고 말갈병사들은 전부 생매장했지만 고구려 병사들은 모두 목숨을 살려줬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아마 고구려가 전성시기를 맞은 때부터 말갈족은 거의 고구려에 흡수 혹은 동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는 말갈족이 추장인 걸사비우가 대조..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