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원균의 동생 원연

2021. 6. 28. 12:5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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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oCXkhjUJvk

이상하게도 원균에 대한 재평가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원균의 고향이라는 평택시에 가면 원균의 묘와 사당까지 있네요.

정말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자신 휘하의 판옥선을 자침시킨 전적이 있고, 거기에 충무공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그 강력했던 조선함대를 잃게만든 장본인이 원균인데 왜 이런 무능한 인간을 떠받들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원 (naver.com)

 

성씨. 본관은 원주(原州) 단본. 시조는 고려시대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원극유(克猷)이다. 고려 말기에 많은 명신을 냈으며, 조선에서는 문과 급제자 63명과 상신 2명을 배출하였다. 특히 고려 말

terms.naver.com

원래 원주 원씨는 명문가입니다.

고려때부터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한 집안이라서 이 집안 사람이라면 어디가서 기죽지 않을만큼의 집안역사를 자랑하네요.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시조의 작자인 원천석도 이 집안 사람입니다. 망해가는 고려조를 위해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인물인줄만 알았는데 꽤 유력집안의 일원이었네요.

하지만 유독 원균의 악행이 널리 알려져서인지 그 후손들이 원균을 포장하려는 노력을 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원균만 어떻게 잘 포장하면 원씨집안의 흠을 감출수 있을거라고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연 - 나무위키 (namu.wiki)

하지만 원균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봅니다.

바로 원균의 친동생이지만 비겁하게 살다간 형과는 다르게 의병을 일으켜 당시 5만여의 조선근왕군을 용인에서 대파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병을 깨뜨린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원연이라는 인물입니다.

정식 무장이 아니었지만, 의병을 이끌고 왜군기병을 이리저리 유인해서 용인의 햇골에서 와키자카의 기병을 크게 이기게 됩니다. 글만 읽던 선비였지만 이런 지휘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후에 공로를 인정받아 적성 현감으로 재직시에 선정을 펼쳐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상관과 마찰을 빚어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능력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은듯한 모습입니다.

이후에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되고, 형인 원균이 칠천량에서 시원하게 조선함대를 수장시키는 동안 원연은 다시 의병을 조직합니다. 조선수군이 없는 틈을 타서 왜군이 여러 방면으로 전라도로 침공해 들어오자 피난가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중과부적의 군사를 이끌고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그 형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원연의 모습을 살펴보면 원씨가문에서 원균을 추숭할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원연을 더욱 알리는데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평택시도 원균묘와 사당을 홍보하는 대신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끝까지 목숨바쳐 싸운 원연을 홍보하는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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