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9. 11:50ㆍ역사
고려의 28대 군주였던 충혜왕은 정말 막장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몽골의 힘을 얻어 고려의 군주로 즉위한 충혜왕은 이미 태자시절부터 절에 불을 지르거나 술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여성들을 건드리는 등의 행실을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부왕인 충숙왕에게 따끔하게 혼나도 그때뿐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부왕인 충숙왕이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잃고 원나라 대도로 들어가자, 충혜왕은 정사는 전혀 돌보지 않고 오직 술과 놀이에만 몰두했고 부왕의 후비들과 정비였던 몽골출신 경화공주까지 닥치는대로 손대어 결국 원나라에 의해 쫓겨나게 됩니다.
잠시 충숙왕이 복위해 고려왕조를 이끌긴 했지만 개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한채 죽었고, 충혜왕이 돌아와 이전보다 더욱 막장같은 모습을 보이며 고려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고려후기의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히는 기황후의 오라비 기철 등이 충혜왕의 행각을 버티지 못하고 원나라에 밀고해 원 순제는 그를 고려군주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대도로 소환하게 됩니다.
어찌나 인심을 잃었던지 원나라의 관리들도 충혜왕을 제대로 호송하지 않고 짐도 직접 들어야 했으며, 순제의 질책을 받고 광동으로 귀양을 가다가 30세의 나이로 독살당하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고려의 백성들은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고려 최고의 폭군 충혜왕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충혜왕의 아들인 충목왕이 고려의 군주에 등극했습니다.
원나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던 그는 여덟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고려군주가 되었지만 워낙 영민하고 눈치가 있어 모두의 기대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고려로 출발하기 전 원 순제가 그를 불러 여러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폭군이었던 아버지보다 몽골의 공주인 어머니를 닮겠다는 포부를 보이며 영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344년 즉위한 그는 어머니인 덕녕공주의 도움을 받아 정사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부왕인 충혜왕이 쌓아놓은 폐단을 개혁해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으며, 또한 어머니의 강한 뒷배를 이용해 간신들도 제거했다고 합니다. 물론 원나라와 긴밀하게 연결된 간신 기철같은 이들은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간신들과 권문세족이 독점한 토지를 개혁하며 농민들에게 돌려주려 애썼고, 양전사업을 벌여 민심을 다잡기에 노력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라에 기근이 들자 적극적으로 구휼에 노력하며 더욱 명군의 자질을 보인 것입니다.
또한 이전의 충렬왕, 충숙왕과 충혜왕이 서로 퇴위와 복위를 반복하며 실록이 제대로 편찬되지 않았는데, 충목왕 시기에 실록편찬을 다시 시도하고 학문을 진흥시키며 국가의 권위를 다시 세웠습니다.
어린나이에 즉위하고 어머니의 도움을 크게 받기는 했지만 이렇듯 열살이 채 되지 않는 나이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충목왕이기 때문에, 이대로 나이를 먹고 고려를 통치한다면 크게 쇠퇴한 고려왕조는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1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병에 걸려 요양하던 와중에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면서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당시 세계를 덮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고려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아마도 충목왕 역시 이 흑사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겨우 5년남짓 즉위한 충목왕이지만, 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입니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며 기대를 모았지만 너무 짧았던 재위기간이 아쉽다는 한결같은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에대한 평가는 꽤 괜찮은 모습입니다.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동한의 질제나 동오의 손량같은 경우에도 너무 일찍 능력을 보여 권력자에게 제거된 일화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시 나름 안정된 정국을 바탕으로 통치했던 충목왕은 병에만 걸리지 않았다면 고려왕조가 부흥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그가 어린나이로 죽고 동생인 충정왕이 고려의 군주가 되긴 했지만 이후 강릉대군이었던 공민왕이 그 자리를 빼앗다시피 밀어내고 고려군주로 즉위했으니, 충목왕의 너무 이른 죽음은 후기 고려왕조의 가장 큰 불운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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