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사문난적과 한국 강단사학계

2025. 10. 18. 11:31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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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당시 떠오르던 학문인 성리학을 받아들여 통치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조선역사 내내 성리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과 함께 보수적인 사상을 보였고, 그로인해 명나라에서 보다 진보된 양명학이 발생하여 수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을 유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까지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조선 후기에는 이런 성리학은 완전히 경직되어 교조적인 모습까지 흘러가게 됩니다.

특히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서인정권은 모든것이 경직되고 보수적으로 일관하였고, 그로인해 당시 서인의 거두였던 송시열은 주자의 해석에 다른 관점을 제시한 남인 윤휴를 사문난적이라고 비난하며 성리학에 대한 그 어떤 다른시각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게 될 정도로 완전히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게 남인과 치열한 정권다툼을 벌이면서 사상적으로도 자유롭기는 커녕 유교경전에 대한 주자의 해석마저 그대로 갈것을 고집하며 다양한 사상적 자유를 박탈한 서인정권은 그래서 우리가 강하게 비판하는 소인배들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21세기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분명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의 역사에도 침투해 식민사관이라는 말도안되는 괴물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을 우리는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들면 바로 사이비역사 혹은 환빠 등의 이름으로 몰아 비난하기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규교육을 받으면서 한국사를 배우다보면, 확실히 반도사관과 식민사관, 그리고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폄하하려는 자학사관이 범벅된 교육을 받을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일제가 비틀어놓고 간 역사를 신봉하는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그들만의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다른 시각으로 보는 노력을 조선후기 서인들처럼 근거없이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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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학계의 무서운 아이들과 거짓말

-남한 학계의 무서운 아이들2016년 『역사비평』은 두 차례에 걸쳐 ‘한국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이란 특집을 마련했다. 생물학적 나이는 젊은 역사학자들의 논문(?)을 여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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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로 한나라가 위만정권을 무너뜨리고 설치했다는 한사군 중에서도 우리 역사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 강단사학계는 무조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고 우기는 중입니다.

하지만 많은 기록들을 살펴보면 낙랑은 최소한 대륙에 있었고, 하북과 산동 일대에 걸쳐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는데도 이들은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고 이것이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라며 그들만의 자뻑에 심취해 있는 모습입니다.

인간이 내놓는 주장은 절대적인 것이 없고, 오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내가 맞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 강단사학계는 요사지리지나 금사지리지같은 중국의 정사마저 오류가 많다면서 부정하고 있고, 더 나아가 흠정만주원류고나 환단고기같은 사료들마저 지엽적인 오류를 트집잡아 전부를 부정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분명 신채호나 박은식 같은 민족사학자분들이 역사기록과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 역사를 망라하고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긴 하지만,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단 한군데도 신채호나 박은식의 연구를 이어받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곳은 없다는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조선 세종시기에도 고구려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려했지만 고구려의 수도를 조선영토에서 찾지 못했고, 지금의 평양이 낙랑이라는 확고한 인식도 없었음에도 식민사관이 창조해낸 평양 일대가 낙랑군이었다는 주장을 펴는이들은 과연 한국인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비록 이 발언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의 발언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들이 왜 우리역사에 손을 댔는지 추정할수 있습니다.

위대하고 찬란했던 역사를 조작하고 바꾸어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식민사관은 송나라가 나라의 절반을 잃고 쫓겨내려가 강남지방에 숨죽이며 살았던 주희가 만들어낸 성리학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오랑캐와 화이족의 구분을 통해 정통이 자신들에게 있으니 언젠가는 오랑캐를 몰아내고 세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성리학은 그래도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을수 있지만, 그저 역사를 왜곡하고 폄하해 우리 역사를 오염시킨 식민사관은 전혀 도움되지 않는 거짓일 뿐이며 분리수거를 통해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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