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4. 11:33ㆍ역사
신라의 김씨는 정말 갑작스럽게 우리 역사에 등장합니다.
신라 김씨의 시조로 알려진 김알지는 계림에 닭이 나타난후 궤짝에 담긴 아이가 등장했다는 설화가 있는데, 왕족이 아닌 사람의 탄생설화가 있는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건 이후에 등장합니다.
일통삼한을 이룩한 신라의 문무왕은 사후 그의 삶을 기록한 비문으로 우리 역사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이 비문에 따르면 신라의 김씨는 흉노족이었던 투후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의 후손이 신라로 온 후에 김씨들이 신라의 대권을 장악하고 결국 왕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석에 등장하는 투후 김일제는 원래 흉노의 태자로,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잡혀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한나라 무제의 배려로 한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고, 이후 벌어지는 반란을 진압하는등 한나라에 충성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일제는 무제로부터 김씨성을 하사받고, 투후라는 자리까지 받아 한나라의 귀족이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변함없이 한나라 조정에서 벼슬하는 큰 세력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나라 말기에 등장한 왕망은 모든이의 눈을 속여가며 연기하다가 결국 한나라를 찬탈해 신나라를 세웠으며, 그 과정에서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좀더 큰 세력이 된 김씨들이지만, 왕망이 15년만에 패망하며 다시 한나라의 유씨들에게 정권을 넘겨주었고 그 과정에서 왕망에 협력했던 상당수의 김씨들은 숙청당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일부의 김씨들이 탈출해 신라로 갔고, 그렇게 신비로운 김알지의 탄생설화와 함께 신라역사에 김씨가 등장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문무왕 사후에 기록된 것으로서, 조작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특히 신라인들이 직접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직접 밝히고 있는 김씨의 뿌리와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가 틀렸음을 유추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강단사학계는 이 내용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역사와 흉노와의 관련성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김씨들이 왕이 된 후에 흉노에서 발견될법한 화려한 금관과 금제유물들이 쏟아지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그들은 그냥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룩해온 것들이 깨질까봐 두려워하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강력했던 단군조선의 후손이었던 흉노와 우리는 어차피 크게 다르지 않은 같은 민족이고, 대륙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제가 비틀고 간 역사를 아직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고 있는 강단사학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내용을 인정하지 않을듯한 모습입니다.
이렇게 흉노와 신라의 긴밀했던 관계가 있었으며, 이후 신라가 망한 후에는 이들 김씨를 필두로 한 신라유민이 북쪽으로 올라가 여진과 결합해 다시한번 대륙을 호령한 금나라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금나라의 국호 역시 신라왕족의 성씨였던 김씨에서 따왔음을 만주원류고가 기록하고 있으니, 더 나아가 흉노-신라-금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흐름도 끊임없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금나라의 뿌리 역시 신라였음을 금사 첫머리가 전부 기록하고 있지만, 강단사학계는 어떻게든 축소하기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과거를 볼수 있는 타임머신같은 장치가 개발되어 왜곡되지 않은 그대로의 우리 역사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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