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4. 11:52ㆍ역사
원나라 말엽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고 전해집니다.
몽골인들이 유독 장강 이남 지역의 한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물리고, 이런 무거운 세금을 내지못한 농민들이 유랑하며 떠돌아다니는가 하면 곳곳에서는 힘을 키운 군벌들이 성장해 원나라 중앙정부의 통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전해집니다.
아무래도 원나라에 끝까지 저항한 남송의 유민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채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했으며 이로인해 장강과 회수 일대의 농민들은 백련교를 중심으로 뭉쳐 결국 커다란 반란군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이 바로 홍건군인데, 머리에 붉은 수건을 쓰고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역사기록에서는 이들이 강력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각지를 약탈하고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도적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건적이나 홍두적 등의 폄하하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며 각지의 유랑하는 농민들이 이들에 합류해 더욱 커다란 집단이 되어갔습니다.
백련교 교주였던 한산동은 1351년 몽골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원나라 정규군에게 궤멸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한림아는 다시한번 세력을 모아 변량에서 송나라를 건국하고 송나라 황실의 후예라는 주장을 하면서 다시한번 원나라 조정을 긴장시키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원나라의 재상인 토크토아는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고, 고려군 23000명과 최영을 비롯한 장군들이 장강일대에 파견되어 싸웠습니다.
최영 등이 이끄는 고려군은 주로 군벌 장사성이 장악한 지역에서 싸웠는데, 장사성이 이끄는 군대와 싸워 한번도 패하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나라의 재상이었던 토크토아가 승리 직전에 갑자기 누명을 쓰고 독살당하며 토벌은 흐지부지되었고, 멸망 직전에 몰렸던 장사성은 고려에 조공을 바치고 바짝 엎드리게 됩니다.
장사성이 고려를 칭송하며 13회에 걸쳐 조공을 보냈고, 지금의 강소성 일대에 고려군이 파견된 것을 보면 확실히 고려가 그곳 일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후 송나라를 건국한 한림아는 북벌군을 편성해 원나라를 공격하는데, 동로군으로 편성된 군대는 원나라의 또다른 수도인 상도개평부를 공격해 약탈한후 원나라 정규군에 밀려 고려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굳이 고려까지 올 필요가 없었을텐데, 원나라 정규군의 토벌을 피해 20만이 넘는 병력이 움직였다는 점은 상당히 석연치 않은 부분입니다. 20만의 군대가 움직이려면 규모가 커져 원나라군을 피할수 없을테고, 이미 상도 개평부를 털어버린 상황에서 원나라군이 그들을 살려보낼 이유가 없을테니 어떻게든 고려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대륙의 다른 곳에 있어야 이들이 고려를 침공한 이유가 설명될 것입니다.
거기에 이들은 1359년 고려를 공격했지만 격퇴되었는데, 이후에도 해안지방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이들이 전부 도적떼였다면 해안지방을 걸어서 공격할수는 없을테니, 아마도 공격용 배를 보유했을것이고 이런점을 보면 도적이 아닌 정규군에 가까운 군대였다고 봐야겠습니다.
그 후에 고려를 또다시 공격하는 1361년에는 유지비가 상당히 많이 드는 철갑기병을 5천이나 보유했을 정도로 단순한 도둑들이 아니었으니, 그저 농민들을 긁어모은 군대가 아니라는 느낌까지 듭니다.
거기에 1361년에 이어진 공격에서는 홍건적이 20만이 넘는 군대를 동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려군의 방어선이 돌파되었고, 개경이 함락되어 궁궐이 불타고 토지대장이 유실되는 등 고려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쪽의 왜구가 약탈과 살인 등을 일삼으며 피해를 입히기는 했지만 수도가 함락되지는 않았는데 홍건적은 몇차례의 공격을 통해 개경까지 함락시켰으니 고려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것은 홍건적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홍건적의 이동경로를 보면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벌에 나선 홍건적이 산서성 요주와 심주, 태원등을 점령한 것은 1358년 6월입니다. 그리고 위쪽의 요새인 산서성 대동을 점령한건 그해 9월이며 상도를 약탈한 것은 그해 12월입니다.
그리고나서는 1359년 1월에 요양을 함락시키고 고려에는 12월에 침입했으니, 뭔가 이상한 시간적 여유가 굉장히 많은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게 쫓기는동안 원나라군대와 교전했을텐데도 병력이 줄어들지 않는점과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재정비할 시간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을 보면 이상할 뿐입니다.
또한 20만명이 넘는 홍건적이 장강 일대를 출발해 하남과 산서를 거쳐 하북성 일대의 상도를 공격한후 요동으로 와서 요양을 함락한후 고려까지 왔다는 것이니 이들은 군대가 아니라 행군의 달인들이었음이 분명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 먼 곳까지 행군하면서 원나라 정규군과 싸우고, 병력을 보존하면서도 결국 멀리 떨어진 고려까지 와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홍건적의 행적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분명 수도가 함락되고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피해를 입은 고려 덕분에 홍건적이 고려까지 온건 맞는듯 한데, 이들이 고려까지 오게 된 명확한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홍건적이 북벌하게 된 것은 원나라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의 북경일대에 있었다는 원나라 대도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동쪽으로 틀어 고려를 공격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울 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고려를 공격했다가 살아남은 잔당들이 다시한번 원나라 상도를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이미 장강일대를 출발해 하남과 산서를 거쳐 하북과 요녕을 거친후 한반도 고려까지 공격해 진격했다가 패하고 다시 하북성 상도까지 왔다는 것이니, 이들은 정말 단순한 농민반란군이 아닌 로봇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입니다.
이런 기록상의 설명이 가능하려면 확실히 고려는 지금의 반도뿐만 아니라 대륙까지 영토로 가지고 있어야 설명됩니다.
그래야 원나라에 쫓기던 홍건적이 밀려 고려로 들어온 것과 함께 고려에서 살아남은 잔당들이 다시 원나라 상도를 공격했다는 점을 설명할수 있으며, 이후 이어지는 명나라와 고려의 국경분쟁 역시 고려가 반도도 전부 차지하지 못한 작은 나라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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