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7. 13:51ㆍ역사
동로마제국은 바실리우스 2세의 치세를 거치면서 동방의 최강국으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바실리우스 2세가 죽으면서 후계자를 전혀 남기지 않았고, 단독 황제가 된 그의 동생인 콘스탄티누스 8세는 매일 놀고 마시는 일만 벌일줄 아는 무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제국은 빠르게 쇠퇴해갔습니다.
특히 1071년 셀주크투르크와 벌인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정예 로마군은 궤멸당했으며, 황제였던 로마누스 4세는 사로잡혀 있다가 풀려나 내전으로 죽는 막장전개를 보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동로마의 경제와 인구가 집중된 소아시아 지역은 투르크의 침입을 받아 모두 상실되었고, 약해진 제국을 사방팔방에서 노리며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등 동로마제국은 소생불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가 된 알렉시우스1세 콤네누스는 다시 국가를 정비했고, 점차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십자군이 결성되어 동방의 투르크와 싸웠고, 동로마제국은 자신들을 노리는 외적들과 싸워 하나하나 격퇴하는 와중에 점진적으로 이전의 문제들이 해결되어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즉위한 요안네스 2세는 한층 강화된 국력으로 다시 로마제국군을 무적의 군대로 양성했고, 그렇게 강화된 로마제국을 아들인 마누엘 1세에게 물려준 것입니다.
1143년 즉위한 마누엘 1세는 2차로 일어난 십자군을 잘 신경쓰며 동방으로 호위했고, 그러는 와중에 잃어버린 제국의 영토였던 남이탈리아 원정을 준비합니다. 엄청난 군자금을 뿌리면서 각지에서 반란을 사주한후 진입한 동로마 제국군이었지만, 결국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후퇴할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야심차게 준비한 남이탈리아 원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원정의 성과는 동쪽에서 거두게 됩니다. 동쪽 안티오키아 공작이었던 르노 드 샤티용을 제압하고 다시 복속시켰으며, 주변지역을 모두 동로마제국의 수중으로 편입시키면서 예전에 잃어버린 영토를 하나하나 수복해 나갔습니다.
거기에 당시 동유럽에서 상당한 강국이었던 헝가리와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발칸반도의 상당부분을 동로마와 헝가리가 나누어 차지하고 있었는데, 헝가리에 마침 왕위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자 동로마제국이 개입하여 전쟁이 일어났고 양측이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167년 시르미온 전투에서 로마군이 최종적으로 크게 승리하면서 헝가리의 세력권이었던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지역까지 모두 동로마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헝가리는 제국의 종속국이 되어 한동안 공물을 바치고 원정에 군대를 보내는 등 로마의 간섭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베네치아와 무역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동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해군력이 박살났는데, 그동안 베네치아에 특권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해군을 제국이 이용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제노바와 같은 다른 곳에도 허용하면서 베네치아의 불만을 샀고, 제노바인들을 공격하면서 결국 동로마제국과 전쟁을 시작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잘 정비된 동로마제국의 해군력은 베네치아의 원정군을 잘 방어했고, 수도쪽으로 밀고들어온 베네치아의 함대 역시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하고 격퇴당했으며 1172년 제국군의 추격을 받아 패배하고 본국으로 겨우 살아 도망칠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성공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누엘 1세는 십자군을 조직하여 동방원정을 크게 기획합니다.
봉신이던 헝가리와 안티오키아, 그리고 세르비아 등지에서도 군대를 보내왔고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전쟁은 대다수 기독교 국가들이 참여하였지만 초반부터 고전하였고 1176년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동방십자군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마누엘 1세는 이 원정의 대실패로 권위가 추락했지만, 이것을 절묘한 외교로 만회화면서 결국 말년에는 주변 정세들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수습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각지의 세력들과 때로는 전쟁으로, 때로는 혼인관계로 제국의 평화를 이룩한 마누엘 1세지만 즉위한지 37년이 되는 1180년에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퇴위한지 한달만에 6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마누엘 1세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갔지만, 후손들이 변변치못한 인물들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사후에는 다시 동로마제국이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인 알렉시우스 2세가 너무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고, 그런 틈을 이용해 안드로니쿠스 1세가 찬탈하여 제국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으니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그의 실책이 국가를 망쳤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누엘 1세가 살아있을때는 이전에 잃어버린 상당량의 동쪽 영토를 수복할수 있었고, 주변 강국들을 굴복시켜 로마제국의 위엄을 보였기 때문에 대제라는 칭호를 받을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의 군대가 필요이상으로 패배를 당했고, 명성에 걸맞지 않은 말년의 패배 역시 미화될수는 없겠지만 균형잡힌 외교와 함께 로마제국을 다시 강한 국가로 건설한 업적만큼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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