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4. 12:46ㆍ역사
고려라는 국가는 건국초기부터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강력한 국방력과 함께 넓은 영토를 가진 고려는 절대 초라한 국가가 아니었지만, 일제 침략기의 관변학자 쓰다 소키치를 비롯한 일본인 학자들이 고려를 집중적으로 축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압록강 하구부터 도련포까지였다는 고려의 국경은 그렇게 기록된 역사서가 하나도 없고,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고려국경과 영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고려의 동계를 살펴보면 일본 관변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은 한국 역사학계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이 드러납니다.
비록 연혁과 명칭은 같지 않지만, 고려 초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험이남에서 삼척 이북을 통틀어 동계라 일컬었다.
고려사 지리지 3 동계 제 58권
이 기록을 보면 고려의 동계는 지금 지도에 그려진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공험진 이남부터 삼척 이북의 땅을 동계라고 불렀는데, 지금 지도에 나온 동계는 함경남도부터 경상북도를 넘어 포항 근처까지 굉장히 길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이라면 강릉과 동해를 지나 내려오는 부근이고, 이곳은 경상도에 닿지도 못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삼척 이남의 지방까지 전부 동계로 표시되어 있고, 동계의 최북방이라는 공험진은 표시조차 되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고려사 지리지 동계편에서는 예종 2년에 윤관이 원수가 되어 여진을 토벌하고 9성을 쌓은후 공험진 선춘령에 비석을 세워 고려의 영토임을 알렸다고 하면서 고려의 북방강역을 밝히고 있는데, 이점은 전혀 고려강역에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공험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선의 세종이 여진을 토벌하고 강역을 다시 획정하면서 김종서에게 다시 확인시키는 부분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두만강 경원 복호봉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00리, 동북쪽으로 선춘현에 이르기 700여리를 관할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 함길도 길주목 경원도호부
이 기록을 보면 세종이 윤관의 비석을 찾았지만 그때는 찾지 못했고, 대신 공험진과 선춘령까지 직접 지배하는 형태로 북방강역을 다시 확정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려의 북방강역을 이어받은 조선도 공험진과 선춘령을 자신들의 땅으로 생각하고 지배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서 잊혀졌고 그것이 결국 일본 관변학자들의 농간으로 정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서는 고려의 영토를 다시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경계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라는 구절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내용과 서로 충돌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고려사를 살펴보면 요나라 황제가 고려영토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라 황제가 말하기를, 고려는 바다 모퉁이에 사직을 세워 북쪽은 용천에 이르고 서쪽은 압연에 이르렀으니... 고려사 숙종 2년 12월 14일
이라는 구절을 보면 고려의 영토가 결코 반도도 차지하지 못한 초라한 국가가 아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록의 압연은 지금의 요하일대를 말하고 있고, 용천은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니 고려는 만주일대까지 차지한 강력한 국가였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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