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운이 억세게 좋았던 창업군주, 동한 광무제

2022. 9. 3. 11:58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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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유명한 무제가 흉노를 비롯해 주변의 조선과 월남 등지를 원정하면서 크게 국세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후기로 가면서 무제가 낭비한 국력의 한계를 보여줬고 특히 한나라 말기의 유명한 암군이었던 성제의 치세를 거치면서 완전히 쇠퇴의 길로 접어듭니다.

결국 왕망이라는 외척이 슬금슬금 국가를 잠식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국가를 찬탈하여 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능력의 부족과 함께 경제정책의 대실패로 결국 각지의 농민반란과 호족들의 자립으로 완전히 무정부상태로 접어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형인 유연과 함께 봉기한 유수는 정말 평생 운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하남성에서 태어난 유수는 봉기한 초기에는 능력있고 평가도 좋았던 형 유연과 함께 군대를 이끌면서 점차 경험을 쌓아가다가 한나라의 정통에 좀더 가까운 유현을 경시제로 추대하고 그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곤양성을 만명 남짓한 병력으로 수비하고 있었는데, 이때 장안에서 아직 세력을 가지고 있던 왕망이 중앙군을 내려보내 곤양에 있는 유수와 완성을 공격중인 유연을 공격하게 합니다.

그런데 자칭 43만의 대군이라는 왕망의 군대였지만 실상은 그렇게 정예병이 아니었던듯 합니다. 천명의 돌격대가 진격하자 바로 왕망군이 흩어져 달아났다는 기록을 보면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던 모양입니다.

성을 빠져나가 응원군을 데리고 돌격한 유수에 의해 왕망군은 궤멸당하며 결국 곤양성의 포위를 풀고 큰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겨우 2만 남짓한 병력으로 수많은 군대를 이겼다는 곤양대전이 이렇게 마무리되며 유수는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오합지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와중에 적은 군대로 많은 적군을 이겼으니, 여기서 또 그의 행운이 따랐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인 유연 역시 큰 성이었던 완성을 함락시키면서 명성을 더욱 높였는데, 점차 그를 질투하기 시작한 경시제는 사소한 트집을 잡아 결국 유연을 죽이게 됩니다.

당시 형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아무래도 당시 형의 능력이 더 뛰어나고 명성도 높았기 때문에 유수 대신 그의 형이 죽었다고 볼수 있는 상황이니만큼 역시 그는 여기에서도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형은 죽고 경시제는 각지의 호족과 제후들을 이끌고 장안에 숨어있는 왕망을 죽이며 다시 한나라를 재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관중지방의 경제가 완전히 피폐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군들도 굶주릴 정도였다고 전해지며, 새로운 국가가 어떤 일을 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경시제는 유수에게 화북에 있는 잔존 반란군을 진압할 것을 명령하는데, 그렇게 화북으로 떠난 유수는 정말 경정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하겠습니다. 장안을 점령한 이후, 경시제는 주변의 능력있는 장수들과 신하들을 처형하고 유배를 보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는데 유수는 화북으로 간 덕분에 이런 숙청의 칼을 피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화북으로 가서 각지의 반란군을 진압하던 유수는 순조롭게 각지를 평정하던 중 왕랑이라는 최대의 적을 만납니다.

당시 어지러웠던 화북의 민심을 장악하고 조정에 반항하던 왕랑 덕분에 유수는 패전을 거듭하고 쫓겨다니는등 크게 고전했지만, 결국 왕랑의 근거지였던 한단을 점령하고 화북을 평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동쪽의 도적떼인 적미군이 장안을 점령하고 경시제를 폐위시키자 이것을 구실로 삼아 유수가 황제를 칭하면서 광무제가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때 유수의 나이가 만 30세였다고 하니, 다른 창업군주들에 비해 황제가 된 시기도 빠른 편이고 비교적 순조롭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미 적미군이 점령한 장안은 주변이 황폐화되어 버렸으므로 광무제는 자신이 태어난 하남성의 낙양으로 새로운 수도를 옮기고 다시 한나라를 재건합니다. 황족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유씨가 다시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 서쪽의 장안을 수도로 했던 한나라를 서한, 동쪽의 낙양을 수도로 한 한나라를 동한이라고 불러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황제가 된 광무제는 황제가 되기 전 목표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관직에 오른다면 집금오까지, 그리고 결혼을 하게된다면 음려화와 하겠다는 목표였다고 하는데 당시 집금오는 황제가 행차할때 깃발을 높이 들고 황제가 가는 길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시 광무제에게 상당히 멋져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당시 미녀로 유명했던 음려화는 결국 나중에 광무제와 혼인하게 되니, 결국 젊었을 때 세웠던 목표를 초과달성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한나라를 재건하고 천하를 다시 통일한 광무제이고, 거기에 공신들을 죽이지 않고 포상하여 내려보내는등 좋은 정책과 백성들을 쉬게 한다는 휴식을 부여하며 명군의 자리에 오른 그였지만 행운은 거기서 끝이 납니다.

광무제가 62세까지 길게 재위하며 좋은 정치를 펴긴 했지만,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명제와 장제, 화제 등은 하나같이 부족한 재능과 일찍 죽어버리는 고질병까지 동반하며 어렵게 재건한 한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는 와중에 외척인 두씨일족이 득세하며 동한에 큰 피해를 주었고, 훗날 동한왕조를 멸망으로 이끈 환관세력이 힘을 얻어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가운데 삼국지에도 나오는 황건적의 난으로 동한왕조는 완전히 망조의 길로 접어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광무제는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서한말기에 무제가 점령했던 조선땅은 고구려가 들고 일어나 조금씩 되찾고 있었는데, 광무제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 고구려가 점령한 낙랑군을 다시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고구려와 전쟁을 했던 모양입니다.

무제가 개척했던 서역이나 월남 등지의 땅은 포기하면서 유독 옛 조선의 땅인 낙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고구려의 위대한 정복군주로 기록된 대무신왕을 이기고 낙랑을 차지한 것을 보면 당시 낙랑땅이 굉장한 가치를 가진 곳이었던듯 합니다.

 

확실히 동한을 세운 광무제는 평생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거병했을때부터 시작해서 숙청의 칼날을 피해 화북으로 갔던것, 그리고 성공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장안의 정부가 무너져준 덕분에 수월하게 황제가 되었던 것, 그리고 예전부터 동경하던 미녀와 결혼하게 된 것 등 이 사람은 정말 너무나도 행운이 넘쳐났던 사람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다만 그 행운이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아 결국 왕조가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으니, 그는 명군이었지만 변변치않은 후손들 덕분에 나라가 멸망해버린 비극을 지켜봐야했던 창업군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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