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교체 후 숙청당한 왕족들

2022. 8. 14. 12:20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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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한나라 이후 역사를 담고 있는 삼국지에도 나오듯, 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는 조비에게 황제자리를 빼앗기고 나서 산양공이라는 명예직을 받고 물러납니다.

다만 죽거나 억압받지 않고 천수를 다하고 죽을때까지 무사히 살았으며 이후 사마씨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이후에도 나라가 망하며 끌려온 촉한의 유선과 동오의 손호 역시 죽지 않고 낙양에서 무사히 생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끼리 죽이고 죽이는 막장정치의 끝을 달리던 서진왕조의 정치투쟁 중에 오히려 휘말리며 죽어간 전 왕조들의 사람들이 많았으며, 결국 서진의 수도인 낙양이 이민족인 유총의 손에 함락되며 진왕조는 남쪽으로 쫓겨가고 화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을 일자무식의 무인이었던 이민족 출신 석륵이 일시적으로 북방을 통일했지만 이후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석호가 나름 국가를 유지해 나갔지만 결국 염민의 손에 의해 후조는 멸망하며 이 과정에서 후조의 왕족들은 거의 몰살당하게 됩니다.

이때는 한족이었던 염민이 이민족을 죽인다면서 갈족과 저족을 비롯한 이민족들을 전부 죽이는 과정에서 후조의 왕족들도 죽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쫓겨간 사마씨의 동진 역시 유유가 실권을 잡으며 왕조 교체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유 역시 왕족이었던 사마씨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래도 사마씨들은 전왕조의 왕족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인 왕조교체에 이은 왕족몰살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유유가 세운 송나라는 문제 유의륭이 괜찮은 정치를 편적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들이 황제가 된 국가로 유명합니다. 우선 포악한 정치와 잔악함으로 쫓겨나 죽은 황제가 둘이나 있다는 점만으로도 정상적인 국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거기에 유유와 유의륭의 자손들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끼지 죽이고 죽이는 살육의 무대였다고 전해지니 이미 송나라는 다른이의 손에 망하기 전에 자신들의 손으로 망친 국가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심을 잃은 송나라는 소도성의 손에 의해 멸망하고 제나라로 대체되는데, 이 과정에서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는 열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내 후손들은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가슴아픈 유언을 남기고 살해당합니다.

소도성의 찬탈 과정에서 유유가 사마씨들을 숙청한것처럼, 혼란속에서도 살아남은 송나라의 유씨 왕족들은 완전히 씨가 마를만큼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소도성의 제나라 역시 멍청한 인물들이 황제에 오르며 어지러웠는데, 방계왕족이었던 소연이 제나라를 뒤엎고 다시 양나라를 건국하고 무제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잠깐 괜찮은 정치를 폈던 양무제도 반란으로 유폐된채 굶어죽는 최후를 맞았고, 이후 그의 아들들이 양나라를 다시 재건하지만 북방의 침입을 받고 다시 약해진 틈을 타 진패선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왕조가 교체됩니다.

제나라와 양나라는 같은 소씨 일족이 건국하긴 했지만 워낙 자신들끼지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고, 아버지인 양무제가 수도에 포위된 상태에서도 아들들이 눈치만 보며 구원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황제가 된 소찰 역시 내분과 북방의 침입으로 목숨을 잃었으니 차라리 왕조가 교체되며 죽어간 사마씨와 유씨들보다 더욱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이미 소씨 일가들이 권력투쟁을 통해 서로를 죽이고 제거했기 때문에 북제의 침입을 격퇴하고 진나라를 건국한 진패선은 크게 피를 볼 필요도 없이 마지막 양의 황제인 소방지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이후 진나라는 북방을 통일한 수나라의 손에 의해 망하긴 했지만 마지막 황제인 진숙보가 수도인 대흥성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잘 살아갔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학살은 피할수 있었고, 이후 수나라에서 당나라로 왕조가 교체되는 순간에서도 전과같은 그런 전임왕조의 왕족들을 학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나라 말기에 큰 실권을 가지고 있던 환관이 몰살되는 일이 있은 후 당의 마지막 황제인 애제가 살해당하는 정도로 그친것을 보면 이전의 대학살과 크게 비교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중국역사에서 왕조가 교체되며 왕족들이 몰살당하는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후 우리 역사에서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500년간 지속되던 고려왕조를 찬탈한 이성계는 왕씨들과 백성들의 반발을 뒤로하며 조선을 건국했는데, 아무래도 500년간 정통왕조로 군림하던 고려왕족인 왕씨들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다는 신하들이 고려의 왕씨들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자, 이성계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이제 섬지방으로 유력한 개경의 왕씨들을 모아놓고 통제하는 와중에 고려의 마지막 군주 공양왕을 죽이면서 왕씨들도 집단으로 처형하게 됩니다. 기록에는 150여명 정도를 죽였다고 나와있지만 숨겨진 피해자들은 더욱 많았을 것으로 보이고, 기록되지 않은 왕씨들의 죽음은 정확히 셀수 없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성계가 왕씨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신하들의 거듭된 요청으로 이렇게 집단학살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역사왜곡일 것이며 이런 집단 학살에는 이성계의 의지가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강화도와 거제도, 삼척 등지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왕씨들에 대한 집단학살은 아마 고려를 찬탈하여 정통성이 부족하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려의 부활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고자 하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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