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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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일을 돌보다 과로사한 청나라 옹정제
1644년 명나라가 농민반란으로 멸망하자, 청나라는 이것을 기회로 북경에 들어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군주이던 순치제는 변변치않은 인물이었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강희제가 청나라를 다시 세웠다고 할만큼 나라의 기틀을 완전히 다지게 됩니다. 특히 엄청난 기세로 일어난 내부반란을 진압하고 북방의 러시아가 남하하는것을 막았으며, 서양의 기술을 도입하여 청나라를 부강한 국가로 만든 공로가 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강희제는 굉장히 오랫동안 재위했고, 재위 후반부로 갈수록 국정이 문란해지고 관료들이 부패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청나라의 주력군이었던 만주팔기군이 오랜 평화로 인해 전투력이 급감하고 약화되었기 때문에, 강희제의 뒤를 잇는 군주가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
2024.01.27 -
청나라의 통치실패를 보여준 백련교도의 난
몽골의 원나라가 대륙을 지배할때, 강남지방의 한족들은 불가촉 천민으로 취급받으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운 강남지방에서 몽골족들은 수탈하기 바빴고, 결국 백련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홍건적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결국 원나라가 북쪽으로 쫓겨나고 홍건적의 한 갈래였던 주원장이 황제가 되어 명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릅니다. 그렇지만 주원장은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백련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백련교는 명교라도고 하며 주원장이 나라이름을 명나라로 한 것 역시 사방에서 들고일어나던 명교신자들과 자신의 출신을 반영한 것이라는 일설도 있는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지만 오히려 주원장이 이들을 탄압하고 나선 것입니다. 명나라 역사 내내 백련교도들은 탄압을 받았고, 결국 명나라가 망하고 청..
2023.11.01 -
청나라 건륭제에 대한 엇갈린 평가
청나라가 대륙에 진입한후, 강희제는 삼번의 난과 러시아와의 전쟁 등에서 믿을수 없는 업적을 세우며 청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마도 강희제가 아니었으면 청나라는 북방의 러시아와 남쪽의 오삼계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소국으로 쪼그라들었을텐데, 그의 훌륭한 통치로 인해 청나라는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는 12년간의 근면한 통치로 더욱 부강하고 강력해진 국가를 건륭제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통치를 시작한 건륭제는 이전부터 총명한 머리와 유능함으로 국가를 통치했는데, 그로인해 청나라는 소위 강건성세라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3대 120여년간의 시간은 정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그로인해 건륭제 역시 그동안 명군으로..
202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