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했던 대당제국의 후기역사

2024. 9. 1. 10:3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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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전성기였던 현종시기는 번영의 절정을 달리면서 승승장구했고, 영토는 고구려출신 장수인 고선지의 활약에 힘입어 서역일대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일대까지 진출하면서 당나라의 위엄을 보여준 때였습니다.

하지만 현종의 집권후반부에 일어난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으로 당나라는 완전히 쇠퇴해버렸고, 이후 당나라는 각지에서 할거하는 절도사들과 지방세력을 견디지 못하고 조각조각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명군 헌종이 이전부터 이어지던 개혁을 이어받아 중앙군을 복구하고 각지의 통제불능이던 절도사들을 토벌하며 당제국의 위엄을 다시 보였습니다.

다만 이미 이전부터 강해지던 환관세력을 막지못한채 헌종은 환관들에게 살해당했고, 이후 황제를 죽인 환관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은채 새로운 황제를 세워 당제국을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환관세력의 발호와 함께 쇠퇴하던 당나라는 선종의 등장과 함께 중흥의 기회를 맞았지만 결국 개혁에 실패했고, 선종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의종은 인간말종으로 오직 먹고 즐기기에만 몰두한 멍청한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선종은 개혁의 의지와 뛰어난 재능이 있어 환관들을 일시적으로 눌러버리고 정치를 했지만, 워낙 즉위전부터 노는데 집중한 의종은 선종의 눈밖에 난 상태라 황제가 될수도 없었던 인간이었지만 환관들의 옹립으로 보위를 이을수 있었습니다.

14년 가량을 재위한 의종은 얼마나 한일이 없었는지 당시 기록에는 각지에서 일어나는 민란을 막기는커녕 조세를 독촉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살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이 의종시기에 당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여 유학와서 당제국을 찬양하기 바빴던 신라의 최치원마저 실망하여 신라로 돌아갔을만큼 당시 정치는 완전히 엉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를 이은 희종은 의종못지않은 인간으로, 11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구제불능의 쾌락주의자였던 모양입니다.

즉위한지 얼마되지않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수도 장안성이 함락되어 도망치는 와중에도 주변사람들을 모아 축국을 즐겼다고 하며, 사천으로 도망가면서도 그 일대를 수비할 절도사를 축국에서 골을 기록한 자를 임명할 정도로 멍청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인물이 황제랍시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후기 당나라는 망하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희종은 20대의 나이로 온갖 쾌락을 즐기다 죽었고, 나라가 망하는 꼴은 보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소종은 나름대로 능력도 있고 명군의 자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의종과 희종이 국가를 완전히 망쳐놓았고, 그로인해 각지의 절도사들이 완전히 독립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것을 막지 못할 정도였으니 소종같은 능력자가 더 일찍 당나라를 이끌지 못한게 아쉬울 뿐입니다.

이미 당나라의 중앙군은 붕괴되어 흩어졌고, 봉상절도사 이무정에게 패해 재상은 처형되고 후궁은 그를 막기위해 북방의 하동절도사 이극용에게 시집보낼만큼 비참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황소를 토벌할때 그를 배신하고 주전충이라는 이름까지 하사받은 주온은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에 들어와 소종을 압박해 수도까지 낙양으로 옮기게 합니다.

그러면서 장안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장안의 모든 궁궐과 관청들을 불지르고 약탈했으며, 견고하기로 이름났던 장안성벽까지 철저하게 때려부수어 당나라의 남은 모든 권위까지 파괴했습니다.

 

그렇게 낙양으로 옮겨간 당조정은 주온의 명령에 의해 거의 모든 환관들이 주살당하고, 명문귀족들을 황하에 던져 수장시키며 당나라는 망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당나라 중기부터 황제를 죽이기도하고 옹립하기도 한 큰 권세를 누린 환관들은 이렇게 별다른 저항도 못한채 일거에 사라져갔습니다.

또한 각지의 절도사들이 그래도 황제를 구하겠다며 연합군을 조직해 낙양으로 진군하자 윤리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주온은 소종을 바로 죽이며 이들의 구심점을 없애버렸고, 13세의 애제를 세웠다가 바로 찬탈하며 양나라를 건국했으니 그렇게 천하를 호령하던 당제국은 비참한 역사를 마치고 퇴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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