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9. 18:32ㆍ역사
11세기부터 시작된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분열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요나라의 최대 전성기를 이끈 성종이 죽은 이후에는 황제에 오른 인물들이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라 갈수록 요나라는 쇠퇴하고 있었고, 거란의 침입을 격퇴한 고려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문종황제 당시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오히려 송과 요, 그리고 고려의 팽팽한 세력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나름 괜찮은 정치를 보여준 송나라의 철종이 죽은후 황제가 된 휘종은 애초에 황제의 재목이 아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오히려 뛰어난 정치가보다는 예술가였고, 국가를 다스리기보다는 놀기 좋아했던 무능력자였는데 운좋게 황제가 되어 송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암군중 하나입니다.
그런 무능한 휘종도 차츰 느껴지는 요나라의 쇠퇴는 송나라로 하여금 다시 고려와 손을 잡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만약 요나라가 쇠퇴하여 무너지면 고려와 함께 거란을 공격하여 땅을 나눌 생각이었는지, 휘종 역시 고려의 외교에 큰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고려에 파견된 송나라의 사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는 책을 남긴 서긍이라는 인물입니다.
서긍은 휘종의 명을 받아 고려에 사신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고려의 정보들과 정세를 염탐하여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는 책과 그림을 남겼습니다.
당시 고려황제인 예종이 승하하고 아들인 인종이 뒤를 이어 즉위했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송나라가 서긍을 비롯한 사신을 파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예종의 조문과 인종의 즉위를 축하하기보다는 고려의 정세를 염탐하고 정보를 알아내어 송나라의 중요한 외교자산으로 삼기위해 책을 남겨 휘종에게 바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비록 고려도경은 고려의 정보를 몰래 살펴서 빼돌린 기록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사와 정세를 잘 기록한 소중한 기록이라고 보아야겠습니다. 이후 송나라의 도성이 점령되면서 책이 훼손되어 그림은 사라지고 글만 남아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당시 고려의 정세가 잘 담겨있는 생생한 기록유산입니다.
당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모습과 황궁의 구조등을 비롯하여 백성들의 의복과 풍습 등도 묘사하고 있고, 고려청자에 이르기까지 거의 견문록 수준의 묘사와 설명들이 덧붙여진 모습을 보면 당시 고려의 모습을 어느정도 유추해볼수 있는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책이라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려도경에는 뭔가 이상한 내용이 있습니다.
고려의 강역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내용과 전혀 다른 기록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고려의 남쪽은 요해로 막혀있고, 서쪽은 요수에 접해있으며 북쪽은 거란과 맞닿아있으며 동쪽은 여진과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대목이 설명하는 고려의 강역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고려도경은 송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일종의 보고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나름 정확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인데,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고려의 영토는 지금의 압록강을 넘지 못한 작은 국토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도경에서 설명하는 고려의 강역은 분명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는 지명인 등주, 래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지금 정설로 여기고 있는 일본인들이 그어놓은 고려의 국경선보다는 당시를 직접 보고 들었던 송나라 사람이었던 서긍의 기록에 좀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면서 고려의 영역이 원래 동서 2천리, 남북으로 1천500리였지만 백제와 신라를 합병하면서 땅이 더 커졌으며 동북쪽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서북쪽으로 거란과 맞닿았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거기에 고려가 원래 요수를 경계로 거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가 전쟁을 계기로 지금의 요수인 압록강쪽으로 물러나 전선을 지키고 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이것은 훗날 편찬된 고려사에도 젹혀있는 내용입니다. 고려가 원래 보주성과 내원성 일대를 지키고 있다가 거란에게 빼앗긴 뒤, 여러차례 탈환작전을 전개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요나라가 패망하면서 보주성과 내원성 일대를 고려가 되찾게 되는데 이것을 두고 예종과 신하들이 고려의 축복이라며 기분좋아하는 내용이 실려있으니 이것 또한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기록으로 보입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정설로 알고 있던 고려의 영토는 진실이었는지 확실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려의 강역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우리의 기록과 중국의 기록들이 지금의 한반도도 전부 차지하지 못한 초라한 고려가 아닌, 대륙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는 당당한 황제국이었음을 알리고 있는데 왜 우리만 지금까지 일본인 역사학자가 그어놓은 고려의 초라한 국경을 신주처럼 떠받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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