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7. 13:16ㆍ역사
고대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비잔티온은 워낙 위치가 좋았고, 동서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로에 위치한 항구였기 때문에 이전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그리스 본토로부터 거리가 떨어진 곳이고, 로마에 편입된 이후에는 반역자의 편을 잘못 들었다가 도시가 파괴되고 약탈되는 불운도 겪긴 했지만 워낙 좋은 항구였기 때문에 바로 재건됩니다.
그러다가 324년 로마의 치열했던 내전을 종식시킨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새로운 로마의 후보지로 이곳을 선택하였고 여기에 로마의 건축과 양식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수도로 삼고 천도합니다.
이후 비잔티온이라는 그리스어 표현대신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인 콘스탄티노폴리스라는 이름으로 개명되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천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곳은 삼면이 바다를 끼고 있고, 육지로 들어오는 통로는 한군데밖에 없기 때문에 방어가 쉬운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2세때 기존의 성벽만으로 이민족을 완벽히 막을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벽인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세웠습니다.
이 성벽은 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고, 깊고 넓은 해자가 성벽 밖에 위치하고 있어 더욱 공략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성벽 전체에 96개에 달하는 망루가 있어 적을 감시했고, 전근대의 공성장비로는 절대 공략할수 없는 단단한 성벽이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포위되어도 뚫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역사상 단 세번 함락을 경험합니다.
이전까지 페르시아와 훈족, 슬라브족과 이슬람인들 같은 역사에 기라성같은 악명을 떨친 이민족들이 그렇게 숱하게 이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했지만 단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던 이 도시지만 1204년 동로마제국이 심각한 내전을 겪던 도중에 돈에 눈이 멀어 같은 기독교 국가였던 헝가리의 항구를 털어 자금을 마련한 4차 십자군의 손에 의해 이 도시가 처음으로 함락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때도 성벽을 타넘고 함락된 것이 아니고 당시 베네치아 해군이 금각만을 비롯한 바다로 공격을 해왔고 거기에 버티지 못하고 함락된 것이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동서무역의 중간 기착지로 그동안 수많은 원정으로 각지의 보물들을 모아 수집해 놓았는데, 이곳을 함락시킨 같은 기독교를 믿는 십자군의 손에 의해 그 보물들이 전부 각지로 다시 흩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같은 기독교인을 공격하여 교황에게 파문까지 당한 부도덕한 원정군을 이끈 베네치아인들은 동로마황제의 무덤을 도굴하였고 특히 황제의 의자를 장식하던 장식들마저 떼어 본국으로 보냈다고 하니 이때 입은 피해가 막대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남은 영토는 라틴인들이 나누어 가지며 라틴제국이 성립되었지만, 이후 니케아에 웅거하던 로마제국의 후예들에 의해 다시 도시가 함락됩니다.
하지만 이때는 라틴제국군이 다른곳에 원정군을 파견했다가 니케아제국군이 포위하자 당황했고, 수비군이 열고나와 기습하는 쪽문을 열어놓은 덕분에 생각보다 너무나도 손쉽게 다시 수도를 되찾았다고 하니 콘스탄티노폴리스 역사상 가장 쉽게 함락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당시 라틴제국의 황제는 적군이 성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가기에 바빴고 성의 주민들과 모든 재산들을 내팽개치고 목숨만 구걸한 채로 피신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이떼 파견된 니케아의 군대는 정찰활동을 위해 정말 적은 숫자의 군인들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수도를 빠앗겨버렸고,이전에 나름 훌륭하게 니케아를 막아낸 라틴제국의 결말치고는 굉장히 초라했습니다.
이후 동로마제국이 다시 재건되긴 하지만 슬라브족의 국가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흥기로 인해 제국의 거의 모든 영토가 잠식당했고, 동쪽에서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오스만제국이 일어나면서 다시 동로마는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합니다.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2세가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길이만 8.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우르반거포를 만들었고, 장장 53일동안 치열한 포격을 가합니다.
하지만 역시 난공불락의 요새답게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스만의 정예병인 예니체리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동로마의 사기만 올라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달 가량 오스만군의 공세를 막아냈지만 성안의 수비병력은 1만이 채 되지 않았고, 10만 정도의 인원으로 성을 공격하는 오스만의 공세앞에 점점 지쳐가게 됩니다.
결국 성안을 잘 수비하던 제노바의 용병대장 주스티아니가 중상을 입고 호송되고, 특히 수비군이 이따금씩 쪽문을 열고 기습을 나오던 문이 잘 닫혀있지 않은 틈을 타서 오스만군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잘 버틴 로마군이었지만 황제인 콘스탄티누스12세도 치열한 싸움끝에 시신을 찾을수 없을 만큼 혼전이었고, 그렇게 천년이 넘는시간동안 이어져온 로마제국은 이교도인 오스만의 손에 의해 영원히 멸망합니다.
로마제국이 시작된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여 이어진지 천년이 넘었지만, 로마는 그동안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잘 막아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견고한 수도의 성벽에 의지한 전투였고 멸망하는 그때까지 잘 버티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퇴장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1453년 전투를 동로마가 이겨 수도를 보전했다고 해도 이미 당시 전투의 핵심은 강력한 화약무기와 기동력으로 바뀌고 있었고, 그 덕분에 중세 유럽의 견고했던 성들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사를 비롯한 기득권과 봉건제도가 해체되는 과정을 맞고 있었으니 로마의 멸망은 피할수 없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태평천국운동 (0) | 2022.07.17 |
---|---|
일본과 당을 괴롭힌 신라구 (0) | 2022.07.09 |
삼국지에 등장하는 익주와 이후의 역사 (0) | 2022.06.24 |
카스텔라를 맛본 조선의 실학자들 (0) | 2022.06.08 |
고려 서경의 위치와 동녕부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