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라를 맛본 조선의 실학자들

2022. 6. 8. 11:22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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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카스텔라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에서 기원한 음식이라고 전해집니다.

둘다 성채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둥글고 넓적한 모습 덕분에 지금 보면 두툼한 파이같은 느낌도 들 정도입니다.

이 음식을 만들때는 달걀과 설탕이 많이 들어가고, 버터 역시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특별한 날에 많이 먹는 별식이긴 하지만 의외로 설탕으로 절여 오래 보존할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배에서 선원들이 장기 항해용으로 사용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뱃사람들이 식량으로 활용하던 것 덕분에 포르투갈과 교역하던 일본 나가사키 항구에 이 카스텔라가 전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나가사키 카스텔라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물론 당시 일본에서도 카스텔라를 먹긴 했지만 고급 음식이었기 때문에 고위층들만 즐길수 있었고, 특히 조선에서 온 통신사들을 대접할때도 쓰였다고 합니다.

처음 이렇게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카스텔라를 먹어본 조선 통신사들은 깜짝 놀라며 기록을 남길 정도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조선인들이 대접받은 카스텔라의  맛이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이런 카스텔라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고급 음식이었기 때문에 자주 대접할수는 없었고, 카스텔라를 대접받지 못한 조선 통신사들은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다고 하니 이 음식에 대한 열망이 어땠는지 알수 있습니다.

조선에서 온 통신사들은 일본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용도와 선진문물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으니 대접하는데 돈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카스텔라를 대접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당시 비싼 식재료였던 설탕과 달걀, 밀가루로 만드는 이 음식이 얼마나 비쌌는지 조금 가늠해볼수 있겠습니다.

 

이때 일본으로 파견된 통신사들과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조선의 실학자들은 이런 경로를 통해 설탕이 가득 들어있는 카스텔라를 맛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북경에 있던 네덜란드 외교관들이 사신으로 온 조선인들을 초대해 다과를 대접했는데, 그때 카스텔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고급스러운 단맛에 눈을 뜬 조선인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봤지만, 당시 조선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던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다시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는 청나라가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최전성기 시절이라 굉장히 융성할때였고, 덕분에 청을 배우자는 북학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서양식 빵도 받아들이게 된 듯 합니다.

 

역시 기록을 남기는데 집착하던 조선의 유생들답게, 실학자로 이름높은 이덕무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방법까지 기록으로 남겼을 정도였으니 그때 아마 설탕만 좀더 쉽게 구할수 있었다면 일본의 나가사키 카스텔라처럼 우리만의 독특한 카스텔라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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